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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Mar 05. 2023

취직을 했다.

내 default는 우울인가?

결과부터 말하자면, 회사를 다니고 있던 친한 동생의 오퍼를 받아 추천 채용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친한 동생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경고를 이미 몇 번이고 해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낭떠러지에 몰려 있었고 2023년에는 구직난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뉴스에서 떠들어 대는 통에 집안 전체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고민 없이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의 전체적인 조건도 괜찮았고, 복지나 여러 부분이 내가 원하던 회사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에 가도 될 것 같았다. 또한, 철없는 생각이지만 친한 동생과 함께 다니는 회사라면 삭막한 사회생활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이 나를 자신의 회사에 데려오기를 꺼려했던 이유는 내 스펙이 대기업 서류를 심심치 않게 뚫을 정도로 꽤나 갖추어진 상태였고, 조금만 더하면 다른 더 좋은 회사에 붙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역시도 치열하게 노력해 만든 스펙들이 무색하게 지인 추천으로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친구가 이 회사에 나를 추천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내가 어느 정도 스펙을 갖추어둔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쉬움은 잠시 뒤로 하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친한 친구와 회사를 함께 다니는 것에 대해 많은 걱정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 친한 동생과 회사라는 조직과 관계에 얽혀 잃고 싶지는 않았기에 꽤나 고심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서로 조심하자고 다짐을 했고 우리끼리 회사에서 지킬 수 있도록 몇 가지 규칙을 정해 두기도 했다. 실제로 입사 약 두 달 차를 지나고 있는 지금, 같은 팀에서 일하는 친구와의 관계는 매우 평탄하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이 팀과 팀장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은 것이 와닿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팀과 사람들에 비해 훨씬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회사 복지도 마음에 들었고, 정규직으로서 받는 대우들도 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역시 회사는 회사인가. 


내가 속한 팀은 중간에 이직한 사람들로 인해 팀의 공백이 생겨 있어 급하게 충원 중이던 상태였다. 중간 관리자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원급이 팀장님에게 바로 보고를 해야하는 보고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이 많은 팀장님은 우리가 한 일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할 시간이 남지 않는 사람이었고, 불행히도 내가 맡은 업무는 바로 윗선으로 보고되는 돈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취직을 했고, 입사 한 달 차가 되기도 전에 돈을 만지는 업무를 하게 되었으며, 그 업무들은 팀장님 또한 전임자에게 전결권을 주었던 업무들로써 당신도 잘해보지 않았던 업무였다. 그것을 함께 공부해 가며 업무를 해 나갔고, 팀장님의 실수로 누락되었던 내용을 내가 중간에 끼워 넣는 과정에서 자료가 엉망이 된 상태로 임원진에게 보고 되었다. 


그걸 알게 된 임원진은 노발대발 일을 어떻게 하는 거냐며 난리가 났고, 나는 한 달 만에 대형실수를 친 신입이 되었다. 업무에 대해 숙지하고 소화할 시간조차 없었지만 팀장님이 지시하신 일에 대해 똑바로 따라가고 싶어 노력한 결과였다. 


한 달 차인 내가 맡은 이 일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감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안일하게 업무를 수행하다가 결국 실수를 해버린 내가 한심하기도 했지만, 팀장님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이 동시에 섞여 괴로웠고, 업무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결국 이 일은 다른 사원과 함께 더블체크를 할 수 있도록 나를 포함한 "신입" 두 명에게 업무분장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아직도 내가 친 사고는 수습 중인 상태이다.


3월 말이 되어야 끝나는 이 기간을 내가 잘 견뎌내고, 한 번 실수했다는 불안함을 잘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아직도 너무 걱정이 된다. 몸은 피곤에 지쳐 휴식을 달라고 소리치는데, 침대에 누울 때마다 실수한 것을 알았을 당시의 그 두근거림과 어지러움이 덮쳐오기 일쑤다. 의미 없는 숏츠만 휙휙 넘기며 실수를 무의식적으로 되새김질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무척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첫 사회생활은 역시 쉽지 않은 것이라며 정신승리를 했다. 신입에게 시켜서는 안 되는 일을 시킨 것이고 그 일을 내가 맡은 것뿐이고, 내가 담당이 되었지만, 온전한 내 탓이라기에는 나는 그 어떤 것도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새파란 한 달 차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성장의 과정인지 가스라이팅의 과정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 순간 배울 점을 찾아 기회로 여기는 사람이 진짜 성장할 수 있을 테니 견뎌 보기로 했다.


나는 이 회사가 내 마지막 일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꿈은 작가이고 그렇기에 내가 겪고 있는 매 순간이 내가 쓰는 글의 소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취직이 안된다며 찡찡거리던 그때의 내가 본다면 분명 배부른 소리를 한다 말할 것이 뻔하다. 과거의 나를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이겨내고 싶다.


이 모든 걱정 끝에 결국 푹 잠들 수 있는 밤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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