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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 03. 2023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을 이고 사는 것

장기 취준 백수의 넋두리

“사지 멀쩡하고 건강하기만 하면 돼 아무 데나 들어가.” 28살, 제대로 된 취직을 해보지 못한 내게 엄마가 말했다.


“아빠 정년퇴직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 딸 먹여 살리려면 열심히 해야지.” 야근하고 술 한 잔 걸친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아무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졸업 후 5년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에게, 넌 평생 그렇게 살 거라며 핍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갚지 못한 부채 마냥 내 마음에 쌓이는 느낌이다. 그들의 격려 속에 숨어 있는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가끔은 그게 너무 무거워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고, 그저 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럴 때마다 나보다 훨씬 더 반짝이게 빛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고, 남과의 비교나 열등감 때문인지, 모든 일을 실패하는 내 미래를 보고 온 사람인 것 마냥  ‘에이, 이거 어차피 안돼’ 하며 지레 포기해 버렸다. 취직이라는 그 이름 하나가 평생 해결되지 못할 거대한 시련처럼 느껴졌다.


주인공들이라면 이 난관을 멋있게 헤쳐나가겠지만, 나는 여전히 지나가다 부서진 파편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행인 1 정도로 느껴질 뿐이다.




나는 뭐든 곧잘 해내는 아이였다.


무남독녀로 애지중지 자라나, 예체능도 공부도 할 만큼 해봤고 무엇을 하든 적당히 잘하는 아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능을 보였던 공부 쪽으로 길을 틀었고,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교까지도 무난하게 다녔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분명 내 세상이건만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대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가 코로나가 시작할 즈음 취직준비를 시작해서 이렇게 됐나?

아무 계획 없는 휴학을 1년이나 해버리고 얼레벌레 시간을 보내버린 탓인가?


아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성실한 모범생으로 자라난 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하실 거다. 그래도, 넘들보다 늦은 만큼 훨씬 좋은 곳에 가지 않을까, 하며 은근한 기대를 차마 놓지 못하고 계시기도 할 것이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내가 낳고 키운 자식이 만 22세까지는 자랑스러운 자식이었을 것이 분명했는데 어느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더니 끈기도 없고,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하지도 못하고, 쉽게 포기하고, 이것저것 중구난방 차라리 일을 키우면 모를까 깔짝대다가 끝내니 얼마나 답답할 노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있고, 그 무엇보다도 ‘내 딸’이니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싶으실 것이다.


부모님은 가끔 ‘우리 딸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정도로 엄마 아빠가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면, 집에 돈이 많았다면, 우리 딸이 이렇게까지는 힘들지 않았을 텐데,’ 라며 미안해하신다. 그런 모습에 내 마음속 부모님에 대한 부채는 한층 더 까마득해진다.


하지만 이 부채를 갚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제 먹고 살길을 찾지 못한 못난 자식이 됨으로써 얻은 부채라면, 취직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마 이 부채를 모두 상납(?)하고 나면 또 다른 부분에서의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이 나에게 부닥칠 것이다.

 

삶에 모든 시점에 고민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맘 속에 또 되새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도 말이 길어진 글이지만, 면접탈락 소식을 막 접한 후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라는 생각에 주절주절 글을 써보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로하면 그게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누군가의 하이라이트 씬과 나의 비하인드 씬을 비교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내 하이라이트씬은 대체 언제일까?


이렇게나 뜸을 들이는 걸 보니 꽤나 화려하게 휘몰아치는 하이라이트인가 보다. 그게 아니라면 상당히 불만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뭐, 뻔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이라이트씬은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그래도 오늘의 부정적인 감정을 꾸역꾸역 글로 당겨 쓴 나 자신에게 아주 큰 위로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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