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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Jun 05. 2024

우리 엄마

말대답 사건

 엄마 동네 분들은 대부분이 요양보호사나 노인 일자리 등으로 일을 하신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다. 아픈 아빠를 돌보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히 힘들어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웃집 할머니가 엄마에게 말을 거셨다고 한다.


"퇴근하고 오나 봐?'

"아니요, 놀다 왔는데요. 돈 쓰고 놀다 왔어요."

"!..."


 엄마의 대답에 할 말 없어진 이웃집 할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엄마는 그 할머니를 곯려 주고 싶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알고 보면 엄마는 세상에, 사람들에게 화가 나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엄마는 복지센터나 교회에서 주로 설거지 봉사를 하셨다. 그리고 그걸 무척 좋아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우리가 다 크고 나면 봉사하러 다니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걸 실천하며 사신다. 아빠가 아프고 체력이 달리기 시작하니 복지센터는 가지 못하고, 교회에서는 여전히 설거지 봉사를 하신다. 그게 제일 좋다면서. 


 엄마는 또 돈 쓰는 걸 좋아하신다. 매주 똑같은 양복을 입고 오시는 전도사님이 안쓰러웠는지 양복 값을 주고, 남편을 잃은 이웃 아주머니에게는 이웃 보조금(?)을 50만 원이나 주었다고 했다. 그것도 여러 명에게. 


 엄마의 돈 쓰는 미담은 과거에도 있었다. 우리가 클 적에도 엄마는 형편이 어려운 사촌들이 찾아오면 항상 용돈을 주어 돌려보냈다고 했다. 때로 보증을 서 달라고 찾아온 형제에게는 보증은 못 해주고 돈 백만 원을 어렵게 마련해서 보내주었다고 했다.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하늘나라에 간 작은 고모의 곁에도 마지막까지 엄마가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와 보지도 않는데, 엄마가 있으니 자식인 우리도 가서 들여다보게 되었고, 고모부는 무척 고마워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참 좋은데, 솔직하고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엄마가 좋은데, 때로 어린아이 같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다. 이웃집 할머니에게 꼭 그렇게 말했어야 했을까? 그냥 네, 하고 오면 될 것을. 


 요즘 어른들 대부분이 경제적 사정 때문에 일을 하는데, 그런 분들이 보기에 우리 엄마는 얼마나 이질적으로 보일까. 작은 연금과 막냇동생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면서도 쓸 것 다 쓰면서도 저축을 하고, 그 돈을 모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너희 할머니를 보니까 나이가 더 들면 먹고 싶어도 입맛도 없고 그렇더라. 그러니까 지금 맛있는 거 먹어야 돼." 


 엄마는 알뜰살뜰 살지만 본인 먹고 싶은 것을 꼭 챙겨 드신다. 아픈 아빠에게도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면서 아빠가 좋아하는 과일이 비싸도 꼭 드시게 한다. 옷은 철마다 한 두 개는 꼭 사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가는 아니다. 엄마의 취향은 고급이다. 어릴 때는 유통기한 임박한 재료들로만 반찬을 했고, 좋은 물건은 쳐다도 안 봤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입맛도 고급이고, 안목도 있었나 보다.


 이쯤 되면 막냇동생이 엄마에게 도대체 얼마를 주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지금 용돈을 정기적으로 못 주고 있어서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엄마의 아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아들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자기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다. 자기는 이제 돈 욕심도 없단다. 그럴 수 있는 건 자식들을 믿고 있기 때문일 거다. 나는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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