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서 믿음으로
자녀를 믿는다는 것.
아침에 깨자마자 남편이 한 소리를 한다. 아이들이 방마다 불을 켜놓고 잔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나왔던 말이지만, 여전히 안 고쳐지고 있다. 처음에는 무서움을 타는 아이들이 일부러 불을 켜 놓고 자는 건가 생각했고, 그다음엔 핸드폰을 밤에 해야 하니까 눈 나빠질까 켜 놓는 게 차라리 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깜빡하고 잠들었다고 매번 답을 한다. 그래도 한두 번이지, 매번 불 켜 놓고 자면 어떡하냐..
남편이 신경 쓰기 시작하면 나는 긴장이 된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온 남편은 자기가 지켜봐 온 아버지와 무척 다른 아빠가 되었다. 얼마나 노력해야 그럴 수 있을까. 그 출발점을 생각하면 남편은 무지하게 노력해 온 것이다. 하지만 백 번 그 노력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래도 여전히 내가 느끼기에는 가부장적인 면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긴장이 된다.
신경이 쓰여서 결국 일찍 일어난 큰 아이한테 말을 걸었다. 내가 출근할 때 항상 자고 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있다.
"밤새 불 켜 놓고 잤다던데, 그런 생활이 너는 괜찮다고 생각해? 몸도 그렇고 정신도 그렇고, 인터넷 사용을 12시까지로 제한하면 어떨까? 밤엔 잠을 자야 하고.."
요즘 수행평가를 한다고 새벽에 늘 잔다고 했었다. 큰 아이는 공부를 하든 뭘 하든 항상 저가 좋아하는 아이돌 영상과 함께다. 손에서 떼 놓지를 않는다.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다른 면에서는 무던하게 생활하고 있는 큰 아이를 괜히 건드려서 사이를 벌리고 싶지 않아 별 말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내가 그걸 건드리고 만 것이다.
딸아이가 대답했다.
"에반데. 나 지금 바빠. 다음에 얘기하자."
확 맘이 상했다. 큰 아이는 둘째처럼 짜증을 내거나 감정을 폭발시키진 않지만, 저렇게 선을 확 긋는다. 매정하게 느껴지게. 물론 저도 기분이 안 좋았겠지만. 누가 아침부터 잔소리를 듣고 싶겠나.
그래서 더 말을 하지 않고 어쩌다 보니 둘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하니까. 서로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잘 갔다 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여간 아무렇지 않은 척은 무지 잘한다.
맘이 상한 채로 그렇게 출근길에 나섰다. 속상한 마음이 가득하다. 어릴 때는 내가 막 몰아세우고, 야단치고 많이 그랬는데, 이젠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다니. 그래도 그때 생각하면 내가 너무했었다. 특히 큰 아이한테. 사랑은 많이 못 주고 야단은 많이 쳤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걸까.
하지만 다시 돌아간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세 아이와 집에 있는 것. 모든 게 다 고통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즐겁기도 했고, 소소하게 기쁨과 보람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다 끔찍하다. 엄마는 이런 날 보며 아직 젊어서 그렇다고 하던데, 나이가 들면 좋은 기억만 나게 된다고. 그래서 아쉽다고. 엄마 말이 맞다면, 나는 아직 젊은가 보다.
그래, 너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수행 평가를 한다고 요 몇 주 계속 바쁘고, 스트레스받고,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겠지. 그저 수행 평가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뿐일 거야. 그리고 그 마음을 달래려고 늘 아이돌 노래와 함께인 걸 테고. 그래, 너도 지금 많이 힘든 걸 버티고 있는 중이지.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달라졌다. 아이는 지금 자기 인생을 잘 살려고 한창 애쓰고 있는 중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 바람직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저 딴에는 무척 애쓰고 있는 중인 거다. 이젠 아이의 삶을 존중해 줘야 한다. 아이의 선택도 존중해 줘야 하고.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에 따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것도 지켜봐 줘야 한다. 이 부분에선 좀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나.
정말 막 나가는 것 같을 때엔 부모가 개입을 해야 할 거다.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남편은 생활 습관 면에서 아이들이 너무 잘못하고 있고 바로잡아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지금 그거 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말은 꺼내볼 수 있지만, 아이가 심각한 상황에 빠지지 않는 이상 강제로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방치하는 것일까.
그동안에는 나의 걱정이 아이들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면, 이제는 걱정을 믿음으로 바꾸고 세상에 내보내야 할 때다. 아이들이 자기 인생을 아끼고 즐겁게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 과정에서 좀 탈이 나도 지켜봐 줘야 하지 않을까. 도움을 청한다면 도와주면서. 이쯤 되면 부모가 자녀에게 줄 것은 머물 집과 돈과 사랑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