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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May 30. 2024

노예에서 자유자로

중독

 불안과 우울, 그리고 충동


 이유가 없는 불안감이 든다.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안전하지 않은 느낌, 가만히 못 있겠는 기분이 불안이다. 불안은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겠는데, 우울함은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임신했을 때, 출산했을 때 병원에서 심리 검사지를 주어서 작성했을 때, 대부분의 문항에 괜찮다고 체크를 했었다. 괜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괜찮지 않았다. 우울했다. 


 자신이 우울해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면? 그것이 우울함인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자살 충동이나 다른 중독에 빠진다면 그게 우울함 때문인지 알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그렇다. 뭔가에 빠져 있지 않으면 불안한 건 알겠는데, 우울한 지는 잘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이유 없이 울고 싶어지기도 하고,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드니까 그제야 나 우울한가? 생각했다. 또 어딘가에 미친 듯이 빠져서 그것만 생각하는 내 모습을 확인할 때,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이 나의 무관심에 서운해할 때, 그제야 나는 내가 우울했나 돌이켜 생각하게 되는 거다. 


 제대로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었나? 잘 모르겠다. 불안보다 더 강력한 것이 우울감인가 보다. 우울감을 견디지 못해 반사적으로 충동적 행동이나 선택을 하고, 또는 어떤 중독에 빠지는 것 같으니, 우울감이 더 괴로운 건지 모른다. 


 그래서 우울감의 실체는 뭘까? 우울감은 무슨 느낌인 걸까. 내가 무가치한 듯한 느낌?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 내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공허한 느낌? 더 이상 희망이 안 보이고 절망만 가득한 느낌? 


 우울감으로 인해 부정적 선택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중독에 빠지는 게 나을까? 예전에 방송에서 연예인 신동엽이 그런 얘기를 했었다. 자신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다가 그 중독을 끊었는데, 이제는 밤마다 라면을 먹는 데에 빠져 있다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중독은 끊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뭔가에 중독이 되어야만 하는 상태인 거구나. 그때는 나도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라는 걸 몰랐을 때였다. 당시 나는 TV에 중독되어 있었다.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면 그 느낌이 불편해서 벗어나고자 도피처를 찾고, 그것이 요즘엔 휴대폰 영상이다. 나는 주로 정보 검색에 빠지지만, 아이들은 유튜브 영상에 빠져 있다. 그것도 아주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어제도 아이들과 저녁 9시부터 30분간 인터넷으로부터 해방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힘들었다. 나도 9시 2분에 휴대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것도 겨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해방의 시간을 선언하고, 아이들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30분을 기다리는 것도 고역인 거다. 신나게 검색을 하다가 중간에 끊으니까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그동안의 아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용기를 낸 나 자신을 칭찬하며, 30분을 보내고 다시 인터넷의 세계로 복귀했다. 얼마나 편안한지.. 진정한 해방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방은 불편함을 수반한다. 적응되기까지는 말이다. 노예가 갑자기 자유자가 되면 힘든 것처럼. 그래도 자유자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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