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타고난 성향과 자질은 바뀌지 않는다. 나에겐 남을 설득할 만한 능력은 오로지 개발의 영역에만 존재한다. 무언가를 주장해서 설득하거나, 판매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좋다고 말해도 대부분이 듣지 않는다면, 그것도 능력일 수도 있겠다.
슬로리딩을 알게 되고, 수업도 슬로리딩으로 준비하면서 우리 아이들과도 함께 슬로리딩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투표를 해서 몽실언니를 함께 읽기로 했다. 아이들은 표지 그림이 너무 구리다며 불만을 표했지만, 6명 중 3명이 몽실언니에 투표했기에 어쩔 수 없이 몽실 언니로 정했다. 사실 다른 선택지도 그리 표지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첫 읽기 시간. 슬로리딩을 소개하며 천천히 함께 읽어가자고 말했더니, 성격 급한 첫째가 답답해했다. 첫째가 많이 닮은 남편도 답답해했다. 새로운 시작을 언제나 힘들어하는 둘째와 넷째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나마 협조적인 건 무던한 셋째 아들. 그래도 엄마 말대로 한번 해보자고 말해주었다. 고마워라.
불만과 짜증을 들으며 소리 내어 한 문장씩 돌아가며 읽기를 시작했다. 네 쪽을 목표로 읽었는데, 양이 너무 적다며 또 불만이다. 한 챕터는 읽어야 한단다. 그래서 다시 한번에 어느 정도 읽을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은 첫째의 방학이 짧다는 이유를 근거로 해서 방학 중 다 읽어야 하니 한 번에 한 챕터씩 읽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우선 2가지 질문을 제시했다. 왜 해방이 되었는데, 일본 거지, 만주 거지가 생겨난 걸까. 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붉은 깃발을 든 청년들은 누구이며 왜 잡혀갔는가. 저마다 한 마디씩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럴듯했다. 배경지식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은 자신의 지식을 뽐냈고, 첫째도 거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왜 몽실이는 엄마와 함께 도망을 치는 걸까. 뒷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다들 추측한 이야기를 이야기했다. 돈이 없어서, 일자리 때문에, 남편이 괴롭혀서, 그러다가 남편이 바람이 나서 까지 답변이 나왔다. 이 지점이 흥미로웠다. 아무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예측하기 활동이 흥미롭다는 것을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 간혹 예측하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이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지 생각해 보자고 질문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말한다. 하지만 그 여러 가지 추측한 내용을 교사인 나는 그리 달갑게 듣지 않는다. 어서 그다음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준비한 내용이 많이 때문이다. 그런데 뒤에 아무 활동이 없이 자유로우니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추측을 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런 여유가 필요하구나.
수업은 평가를 염두에 두고 수업 내용을 짜고 방법을 계획한다. 모든 게 틀에 딱 맞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니 숨 쉴 틈이 없다. 샛길로 빠지는 건 용납이 안 된다. 그러니 무슨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요즘엔 세특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도 자기의 본마음을 숨기고 교사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그리고 세특 작업이 끝나면 달라지기도 한다.
배움에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가르치는 사람도 재미있고, 배우는 사람도 재미있고. 사실 교사도 학생과 함께 배우며 자라 간다. 학문의 즐거움을 아이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나는 최소한 그걸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긴 하니까 그 기회를 잘 살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