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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ug 01. 2024

 나는 지금 슬로리딩 수업 중

<봄봄>을 읽으며

 오늘은 아이들과 '건숭'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건숭'은 '건성'의 방언으로 '대충'이라는 뜻이다. 뜻을 찾아보고 난 뒤, 아이들과 '내가 건숭 하는 것과 건숭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아이는 공부는 건숭 하지만, 게임은 건숭 하지 않는다고 했고, 어떤 아이는 공부는 건숭 하지만, 축구는 건숭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아이는 공부는 건숭 하지만, 노는 것은 건숭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는 준비를 철저히 한단다. 아는 아이였다. 공부도 공부지만, 줄도 알아야 인생을 행복하게 텐데. 


 또 다른 아이는 뭐는 건숭 하고(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뒷 이야기가 충격적이어서.) 공부는 건숭 하지 않는다고 했다. 뭐라고? 아이들은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뭐를 건숭 하지 않는다고 했어? ㅎㅎ


 그 아이는 목표가 분명했다. 그래서 집에 가서도 공부를 열심히 한단다. 수업 때 표정이 안 좋아서 괜히 눈치를 보곤 했는데, 슬로리딩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니까. 


 그래서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단어가 쌓이고, 문장을 이해하고, 글을 이해하는 데 지금은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한다고. 게다가 적용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면 시간이 든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깊이 파고드는 경험을 통해 독해력이 자라나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비효율적이지만, 이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속도가 붙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국어 교과는 도구 교과다. 국어만 잘해도 많은 과목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모든 지식은 글로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내려놓을 수가 없다. 문맥에 적절한 단어를 쓰는 것. 문장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반복하는 것. 


 이 지루한 과정을 이 더운 여름에 하고 있으니, 그런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내가 보기엔 그렇다.) 수업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고맙기도 하고. 


 나의 욕심에 이 수업을 하고 있지만, 이 짧은 방학 보충 수업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그 시간에 차라리 수학 문제를 몇 개 더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할 수가 없으니 나도 다른 도리가 없다. 파고드는 것, 몰입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거다. 


 <장끼전>을 포기하고 현대소설 <봄봄>을 읽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모르는 단어가 여기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잔소리를 한 덕분인지 아이들은 군소리 않고 단어 뜻을 검색하고 적었다. 


 언제나 방향이 중요하다.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나는 이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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