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예정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기분이 가라앉고, 자꾸 우울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하고 또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 본다.
아이들한텐 아플 때 쉬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계약직으로서 일단은 참아본다. 견뎌 본다. 누구는 버티지 말고 즐기라고 하던데,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통제를 먹으면 한결 나을 것이다. 그런데 안 먹고 있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약을 먹고 도리어 더 체할까 봐 신경쓰이기도 하고, 그 약이 더 해롭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합리적인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느낌대로 선택을 하다 보면, 결과가 좋지 않을 텐데, 또 나는 그러고 있다.
사람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이성적인 존재인 것 같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감정에 휩쓸려서 -자기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막 선택을 해 버리고는 굉장히 잘 선택한 것으로 착각한다고 한다. 그러니 결과가 좋을 리가 없다. 어쩌다가 결과가 좋을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좋은 결과를 보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합리적인 이성을 발휘하여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약을 먹는 것이다.
용케도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렸다. 약을 먹으면 몸도 마음도 기분도 한결 나아질 것이고, 오늘 야근할 때에도 지금보다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다들 글을 써야 한다고 하는 걸까.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는 글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말로 해도 좋지만,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사실 대부분이다. 하나님께 토로해야 한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짜증나는 일도 감사한 일도, 혼자 말하거나 글로 쓸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다 보면, 어느날 폭발하기도 한다. 이것도 어쩌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인 것일까? 홀로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 말이다. 그래야 한다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어디 나와 있는 것도 아닌데.
삶의 괴로움은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갑자기 찾아오지만, 그래도 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자.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어딘가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며, 나는 그들의 존재로 이미 내 인생의 충만함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나 자신에게 '메롱~'하고, 내 이름을 부드럽고 자상하게 불러주고, 나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바라봐 주자. 맞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얘기를 듣고 돌아와서 이 글을 쓴다. 다른 사람과 잠시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잠시 내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은 환해진 느낌이 든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를 한계짓지 말자. 약해 보이는 내 육신도 알고보면 꽤 건강하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좋다. 그럼 나는 내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가 보겠다. 오늘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