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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Nov 07. 2023

사주 공부에 대한 고민

아직도 고민중

 요즘엔 소원 적기를 하지 않고 있다. 내 분수에 지나친 욕심이 도리어 나를 해칠 것 같아서이다. 그러면 어디까지 바라면 되는 걸까? 그래서 자꾸 사주풀이가 궁금하다. 내 분수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다윗과 같은 왕도 나오고, 아브라함, 이삭처럼 족장도 나오고, 요셉, 다니엘 같은 총리 대신도 나온다. 모세 같은 위대한 지도자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권세가 있으며, 대부분이 부자였다. 모세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고생길을 걸었다.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늘 쫓겨다녀야했으며, 목숨의 위협을 느꼈고, 아브라함은 낯선 땅에 이사가서 정착하느라 힘들었고, 또 자식이 안 생겨 고민했다. 이삭은 소년 시절에 자기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였고-물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다.-,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으며 억울하게 감옥을 가기도 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적국의 포로로 끌려가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고생 고생하다가 좋은 날을 보기도 했는데, 그 고생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복을 주셨고, 다행히도 대부분은 그 믿음을 평생 지켜갔다. 그러나 다윗은 믿음이 흔들리는 때에 사고를 쳐서 하나님께 아이를 잃는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연단하신다. 그렇게 사람을 쓸 만하게 만들어가신다. 그 과정은 사람에게 쉽지 않다. 그 과정 속에 있을 때엔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마침내 그 과정이 끝나고 성숙해지면 그제서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 있을 때는 잘 모르는 거다. 


 나도 여전히 과정 속에 있다. 무슨 과정인지 모른다. 이 과정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또 새로운 과정에 들어가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여전히 기독교와 사주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사주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복술 중의 하나인가? 나는 왜 계속 사주를 궁금해하고 공부하고 싶어하는가?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대학시절부터 있었다. 그냥 청소년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누가 뭐라한 것도 아닌데, 내 청소년 시절을 생각하면, 그리 불우하지도 않았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청소년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 내가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뭘 도와줄 수 있을까? 


 청소년이 행복하려면 그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 나도 아이들을 키운 엄마로서 생각해 볼 때, 엄마가 행복해야 그 가정이 행복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이 행복해지는 거다. 그래서 엄마들을 도와보자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어린 자녀들을 키울 때 무지 힘들었던 것처럼, 저들도 무지 힘들겠지 싶어서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세미나를 열고도 싶었고, 아기 학교도 해 보고 싶었는데, 여건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럼 뭘 해야 할까? 10년 넘게 육아만 할 때 내가 제일 많이 했던 고민이다.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도 책을 읽으며,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다니. 교사 일은 잘 맞는데, 왜 나는 자꾸 목마른 걸까? 뭘 자꾸 더 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렇다. 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나의 방식으로.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고민이 해결되고, 기뻐하는 모습, 행복해하는 모습을 내가 보고 싶은 거다. 그럴 때 가장 행복하니까. 


 맞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남을 돕고 싶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우선이 아니다. 바로 나의 행복을 위해서다. 이기적인 욕구와 동기로 남을 도와도 되는 것일까 싶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렇게 작동이 되고 있다. 쉬지도 않고, 나는 그 생각에 빠져 있는 거다. 사주에 겨울이 없는 사람이라 쉬지도 않는다. 


 그게 나의 타고난 바라면? 나의 행복과 나의 살 길이 남을 돕는 데에 있다면? 그렇게 사는 게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맞을까? 그럼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은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준비해서 남을 도와야 하는 걸까? 


 5년 전에 어성경이 읽어지네를 만나고 전문강사 자격을 따고는 성경방을 열어 열심히 강의했었다. 너무 재미있었고, 신나게 했었다. 나는 그런게 좋다. 뭔가 배워서 남을 가르쳐주는 게. 어성경을 통해 내 신앙이 튼튼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성향이라 그럴까? 


 나의 불안정한 생계는 나를 자꾸만 다른 데로 향하게 한다. 처음엔 돈 버는 방향으로, 지금은 잘 모르겠다. 뭔가에 매달리지 않으면 불안해서일 수도 있다. 어디 한 군데에 푹 빠져야 사는 재미도 나고, 살아갈 힘도 생긴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또 몸이 지친다. 이 순환구조를 악순환이라 해야 할까, 선순환이라 해야 할까?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고, 나는 내 목마른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다가 육신이 피폐해지는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럼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가? 또 나의 목마름이 인도하는 사주 공부를 계속하는 게 맞는가? 그냥 내 사주만 보고 끝내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 이제야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았는데, '좋은 방법을 찾도록 기도할게요'라는 말 대신에 구체적인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길을 찾았는데, 놓치기엔 너무 아깝다. 그렇다. 아까운 것이다. 이걸 써먹을 수 있는데, 이 좋은 걸 놓치려니 아까운 것이다. 


 이걸로 잘하면 돈도 벌 수 있겠고, 그럼 생계 걱정도 해결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돕는 일이니, 보람도 있다.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가정을 돌보는 일도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고민이 해결이 안 된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내 방식대로 내 마음대로 하다가 내 가족이 피해를 볼까봐 걱정이 된다. 사회적 시선이 두렵다. 


 우주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려 했건만, 여기서 막혀 버렸다. 나는 또 멀고 먼 길을 방황하며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방황하는 나를 기다리고 계신 것일까? 그러면 너무 죄송한데, 이를 어쩌나. 내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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