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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Nov 08. 2023

세상과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

깨끗이 하기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 내 마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마음밭도 사람마다 다르고,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도 각양각색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 나는 어떤 마음밭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매일 특별한 주제 없이 글을 쓰다 보니, 일기처럼 내 생각을 모두 앞에 공개하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누가 이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 브런치에 적힌 나의 글들을 보니,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갑자기 싫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싫은 거였다. 어제 오늘은.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나? 내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좋아해주겠나?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나 자신을 면면히 뜯어본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싫어할 만한 그런 사람인가? 그건 아닌데, 나는 매우 성실하다. 부지런하진 않지만, 책임감이 있다. 따뜻한 마음도 있을 거다. 있다고 믿는다. 남보다 조금일 수는 있다. MBTI로 보면 T 성향이 강해서 공감을 잘 못 할 때가 많지만, 배려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좋아한다. 또 어제는 현관을 정리정돈하였다. 이게 정말 컸다! 오늘 내 자존감의 가장 큰 부분은 이게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나의 게으른 본성을 이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낼 때, 나는 내가 참 좋다. 믿을만하다고 느낀다.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내가 멋져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랬구나. 양씨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그랬다. 나와의 약속을 지킬 때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생각해 보니, 내가 내 모습이 싫었던 건 그냥 내 기분이 별로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바뀌는 거였다. 나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이걸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의 생각을 여기에다 펼쳐 보이고 있다. 바닥까지 보이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많이 드러나고 있을 거다. 그 다음 생각의 흐름은 남편이다. 


 남편은 이제서야 주식을 공부한다. 남보다는 한참 늦은 때다. 그래도 주식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즐거워보여 나는 감사하다. 남편의 직장이 불안한 상태이고, 언제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인데,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 걱정하던 내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날마다 주식에 빠져서 바쁜 모습이 즐거워보였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직장에서의 일도 스트레스 덜 받고, 나한테도 짜증을 덜 낸다. 내가 야간 자습 감독을 하는 날이나 심야 수업을 하는 날에는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남편이 가정을 많이 돌봤다. 얼마나 힘들었겠나. 짜증을 내는 게 당연하다. 나는 나도 힘들어서 그런 남편을 이해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야 좀 보인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게.


 남편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나와 결혼한 직후에 좀 행복해보였고, 금방 아이가 생겨서 또 줄줄이 아이가 생겨서 남편은 책임감에 부담감에 어깨가 늘 무거웠다. 무거운 와중에 나와 자주 싸우고, 전쟁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별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가정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도 남편도 그렇게 힘든데도 항상 가정을 선택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참고 또 참아야 하니. 요즘 즐거운 모습을 보면, 그래, 당신 하고 싶은 거 다해. 이런 생각이 든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돈을 잃어도, 따도 자기 돈인데, 뭐 어떻나. 고생도 젊어서 해야지, 더 나이들면 시도하기도 힘들다. 


 작게나마 사업을 한다고 하면, 그것 또한 어쩌겠나. 해 보고 싶은 건 해 봐야지. 새가슴인 남편이 고생할까 봐 사업은 끝까지 말리려고 했었지만, 그마저도 생각이 바뀌었다. 설령 망한다 해도, 해보기는 해 봐야지 생각한다. 내가 잘 벌면 좋은데, 그래서 남편 하고 싶은 일 다 하게 해 주면 좋은데. 나는 작년 기도제목이 남편이 행복해지는 거였다. 나도 나지만, 남편이 너무 불행해보여서였다. 내 옆에 있어서 그런 걸까 고민도 많이 했었다. 내가 따뜻한 사람도 아니고, 애교도 없고, 잘해주지도 않는데, 늘 피곤하고 지쳐서 내 할 일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나에게서 얻을 게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뭔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약을 잘 챙겨먹어야 한다. 그런데 잘 챙겨먹던 불안증 약을 그제부터 먹지 못했다. 급체해서 속이 많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좀 우울하고 불안했다. 다시 오늘부터 잘 챙겨 먹어야겠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 세월이 지나면, 서로 맞추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나보다. 내가 나를 잘 관리하면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먼저 아껴줘야 한다. 관리 잘 된 상태로 세상에 나가야 한다. 반짝 반짝한 상태로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잘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상쾌한 기분으로 웃는 얼굴로 세상을, 사람을 맞이하자. 지갑은 두둑하게 채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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