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향기 Nov 11. 2023

건강할 거예요

자연스럽게

 혈액 순환이 신경 쓰이는 나이다. 손발이 차갑다는 것은 혈액 순환이 잘 안 된다는 뜻일 거다. 요 며칠은 먹을 때마다 체하고 있다. 한 번 체한 것이 내려가지가 않았나보다. 머리에는 탈모가 온 것도 같다. 


 아, 이제는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지압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신는 내 모습도 놀라웠는데, 비실비실은 해도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내 육신을 걱정하고 신경써야 되는 때가 왔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또 받아들여야 할 거다. 거부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한다. 


 우선 아침에 사과를 먹자. 빵순이지만, 빵과 과자를 줄이자. 달달한 음료수는 그만 먹도록 하자. 대신 물을 조금만 더 마시자. 음식은 배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놓자. 항상 실패하긴 하지만, 애쓰다 보면 어느날부터는 되지 않겠나. 또 영양제를 먹으라고들 하는데, 먹어도 소화가 안 되니, 거부감부터 든다. 아직 그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은 것일까. 


 그리고 믹스커피를 마시지 말자. 정말 힘든 일이다. 일단 어제는 성공했다. 마시지 않고 하루를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은? 카페라떼는 믹스커피와 뭐가 다를까. 카페라떼도 내용물은 비슷한 거 아닌가? 그래도 왠지 더 몸에 좋을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그냥 믹스커피맛을 보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지 싶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하루의 큰 즐거움을 포기하면 그만큼 정신의 건강을 깎아먹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즐거움은 사라지고, 정신적인 풍요가 줄어드니까 말이다. 인생은 하나를 주어야만 하나를 얻는 구조인 것일까.


 남편은 주식 때문에 매일 조울증을 앓는 사람같이 되었다. 주가의 등락에 따라 기뻤다가 슬펐다가 한다. 그 폭이 예상대로 크긴 하지만-남편은 매우 감정형이다.- 그래도 재미있단다. 그 말은 돈을 벌기도 한다는 뜻이겠다. 삶의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재미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이 시기를 매일 살얼음판 걷듯 했을 것이다. 온 집안이 꽁꽁 얼어붙어서 안 그래도 추운데, 벌벌 떨며 살아야 했을 듯하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장의 책임은 크니까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놈의 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그런데 또 그 돈 때문에 또 즐겁다. 악착같이 평생을 절약하며 사셨던 어머니 때문에 돈이 싫다더니, 가장이 되고 나서는 자신도 그 마음을 이해하는 듯하다. 어머니는 당신이 겪었던 고생을 자식들 안 시키려고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신 거다. 그런데 너무 안 쓰신다. 당신한테. 이제 다 먹고살 만하고, 좀 쓰면서 사셔도 되는데, 돈을 쓰는 데는 영 재미가 없으시단다. 아직도 돈을 모으는 게 재미있으시단다. 그러니까 돈이 모이는 것일 거다. 


 우리도 아이가 이렇게 많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마음의 부담감이 덜했을까? 그런 생각은 할 필요도 없다. 넷째를 임신했을 때 그 부담감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남편이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막내를 좋아하고 아낀다. 아니, 막내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 내 사주에 건강운이 그리 좋지 않아도, 우리 아버지가 앓는 병을 내가 물려받을 수도 있지만, 실제 그렇다고 해도,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된다. 큰 것은 막을 수가 없다고 했다. 대비를 하고 조심을 하고 덕을 쌓고 그러면 조금 수월하게 넘어갈 것이다. 그냥 그뿐이다.


 차 조심해라, 남자 조심해라 어른들의 잔소리는 매번 들으니까 지겨운 소리지만, 그 말들로 내 인생이 이만큼 지켜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어른들의 걱정을 쏟아내는 말이라서 듣기는 사실 힘들다. 그래도 그게 사랑인 걸 어쩌나. 걱정도 사랑해야 나오는 것인데. 너무 도가 지나치지만 않으면 들어 드려야 한다. 듣기는 싫지만, 네, 알겠어요. 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저렇게 내 인생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꾸려지고 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지금껏 살아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도 베풀며 살아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나부터 챙겨야 한다. 나를 잃어버리면 그 누구한테도 폐만 끼칠 뿐이다. 도움이 아니라. 

 엊그제 누가 그랬다. 요 앞에 길고양이가 또 새끼를 낳았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길고양이 입양한 건 복받을 일이라고 했다. 안 그랬다면, 임신을 계속하며 불쌍한 새끼들이 계속 태어났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 나도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입양한 고양이 세 마리는 잘 살고 있다. 한 번씩 우당탕탕 사고를 치고, 털을 여기저기 날리고 하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다. 우리 가족과 함께.    


 좋은 일을 하며 살자. 그러기 위해서 나를 먼저 사랑해주고 아껴주자. 우리 가족을 사랑해주자. 고양이들에게 잘해주자.  

작가의 이전글 다육이도 살아 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