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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Nov 24. 2023

삶과 죽음

별거 아닌가

 도대체가 할 말을 하면서 살 수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이만큼 있어도, 실컷 할 수 있는 데가 없다. 남편한테도 말 조심, 사춘기 딸들한테도 말 조심,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한테도 말 조심, 따지기 좋아하는 막내한테도 말 조심해야 안 당한다. 직장에서도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안 된다. 큰일난다. 아이들한테도 말 조심해야지, 생각나는 대로 말 꺼냈다가는 된통 당한다. 나는 구시대적 사람이라 성차별적인 편견도 남아 있고, 장유유서의 관습도 쪼매 남아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기미만 보여도 펄쩍 뛴다. 나도 그 나이 때는 그랬을 거다. 그러니 할 말도 없다. 


 나는 옛날 사람이 되었다. 슬프게도. 소설 속에 40대의 중년 여인이 나오면, 나와는 먼 얘기처럼 들렸었는데, 이젠 아니다. 내가 그 여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세월을 따라 가고 있다. 남과는 다르게, 나만의 방식으로 가고 있지만, 그래도 가고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인생이 있지 않은가.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은 모두다 특별하다. 세상에 하나뿐인 인생이니까. 


 하나뿐인 인생. 그래서 뭐, 달라지는 게 있나? 똑같지. 아니다, 다르다. 하나뿐인 인생이니까, 소중하다.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아무리 환경과 상황이 나를 끌고 가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나를, 내 인생을 챙겨야 한다. 너무 피곤하고 바빠서 모른 체 하다가도, 다시 나를 돌아보며 돌봐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소중하니까. 


 그리고 내가 소중한 만큼, 내 인생이 하루하루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다른 사람의 인생도 소중하다. 그러니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소중히 대해 줘야 한다. 


 <명상록>에 보면, 육신은 대자연 속에 썩어져가고, 정신은 어디론가로 이동한다고 한다. 육신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죽음이란 그저 원자들이 해체되는 것일 뿐이란다. 그러니 죽음도 별 거 아니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죽음은 두렵다. 


 왜냐하면, 죽음은 이별이니까. 내가 사라지는 것은 어떻게 참을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슬프다. 견디기 힘든 슬픔이다. 예전에 나를 무척 아껴주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너무 슬펐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나는 할머니 생전에 잘 해드린 것이 없었다. 그저 할머니는 나를 이뻐하셨고, 내가 하는 일마다 칭찬해주셨다.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며 걱정을 해 주셨다. 나는 할머니의 소중한 큰 딸의 큰 딸, 첫 손녀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죽음을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죽으면 저 천국에서 할머니를 만나니까,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는 저 하늘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겠지. 생각한다. 하늘에서 나를 보며 축복해주고 계시겠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겠지 하면 마음이 막 부풀어오른다. 


 그런데, 내 아이들이 태어나고,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하니까, 이젠 또 죽음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나의 죽음은 가능한 저 멀리로 치워버려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 옆에 오래 있어주고 싶다. 힘들 때마다 우는 소리 하고 찾아올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어서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그러듯이, 너무 오래 엄마에게 매달려 있어서 나는 성인아이였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성숙하다. 


 그래도 힘든 때는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 내가 있어주고 싶다. 전화로 응원해 주고, 기쁜 일 있으면 누구보다 기뻐해주고 싶다. 이 세상에 나만큼, 아니 나보다 내 일에 기뻐해주는 사람은 엄마아빠 뿐일 거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 뿐이다. 아빠한테는 엄마가 늘 전달을 해 주니까.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가. 물론 싸우고 전쟁처럼 서로 아픔을 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그 그늘 아래 살아간다. 


 엄마한테 잘 좀 하자, 아빠한테도 잘 찾아가고.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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