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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Nov 29. 2023

나를 아는 방법

사주에도 있다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무얼 느끼고 생각하는지 표현하는 능력이 그 아이들에게는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남편은 주식으로 돈을 얼마 벌었다며,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다시 생각을 해 봐도, 감흥이 없다. 좋은 일인데, 왜 나는 아무 느낌이 없을까. 원래 감정이 무딘 편이고, 리액션에 영혼이 안 담기기 일쑤인 나지만, 그래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돈이 생겼다는데!


 그래서 남편이 서운해할까봐 출근하고 다시 리액션을 해 주었다. 비웃음을 살까봐 내용을 적지도 못하겠다. 내가 봐도 너무 형편없는 반응의 말이라서. 오~~ 하고 나름 애를 썼지만, 다시 봐도 내가 부끄럽다. 


  왜 그런 걸까. 남의 일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남이 아닌데, 남편은? 그 돈이 내 돈인데. 


 사람은 이득에 대한 기쁨보다 손실에 대한 고통이 훨씬 더 크다고 한다. 그래서 도박을 하면, 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해서 도박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무 이득이 안 생겨도 어떻게든 손실을 만회해야만 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를 해 보겠다고 나선지 1년이 되고, 나도 영끌족에 합류한 셈이 되었다. 그땐 몰랐다. 그 뒷수습을 하느라 엄청 고생을 하고 났더니, 무감각해진 것일까. 계속해서 손실손실, 마이너스마이너스를 겪다보니,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이 미미한 소득으로는 아무 감흥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무감각함. 무감각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크게 기뻤을 때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이 직장 면접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차 안에서 전화를 받고, 정말 뛸듯이 기뻤었다. 생전 이런 기쁨은 처음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기뻤다. 어떻게 이 기쁨을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10년 넘게 일을 쉬다가 다시 재취업을 한 거라서 더 그랬다. 


 내가 우연히 사주를 알게 되고, 답답한 마음에 내 사주를 공부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나의 대운의 시기가 재취업의 시기와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주를 더 믿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내가 쫓아가는 부가,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나에게 해가 된다고 했다. 나는 나의 부자의 그릇을 넓히려고만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뜻밖에도 나를 해롭게 하는 일이었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멈췄다. 매일같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 사주를 들여다보았다. 나의 그릇은 어느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까지만 욕심내면 되는 건지, 안전하게 가고 싶었다. 


 그 때 나의 욕심의 질주가 멈춘 것이다. 그 외에는 나를 멈출 수 있게 하는 게 없었을 것이다. 사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욕망의 화신처럼, 눈에 불꽃이 튀고, 전능감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피폐해졌을 것이다. 가족도 건강도 잃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사주가 다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공부가 한참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100퍼센트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참고용으로는 좋다고 생각한다. 주역과 명리학을 접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늘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성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 나의 무의식이 제멋대로 나를 끌고 가게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오만함과 경솔함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도 안 된다.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고, 관찰하고 그리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이 모든 과정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겸손하고 신중하게, 일이 안 풀릴 때는 역시 겸손하게 준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는 긴장하고 방심하지 않지만, 문제는 일이 잘 풀릴 때 벌어진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것 같은 때에 오히려 주의하고 조심하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타고난 본성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나 자신에게도, 내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이 가장 좋다. 조화와 균형이 깨진 시기에는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더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나에게 물이 부족하면, 물을 채우며 살고, 나에게 목이 부족하면 목을 채우며 살아야 한다. 


 나를 넘어서는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안 되고, 나에게 주어진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러면 큰 탈이 없다. 큰 불만도 없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힘은 사주에서 찾았다. 


 토가 많은 사주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래서 내가 이러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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