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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Nov 28. 2023

어제와 오늘

왜 다른지 모름.

 어제 하루는 속이 부글부글한 격동의 하루였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난 그랬다. 계속 화가 나고, 어디다가 욕도 하고 싶고. 근데 막상 하려고 하니, 잘 안 나온다. 내 욕에 내가 무섭..


 그런 겁쟁이라서 이 일 저 일 떠맡고, 말도 못 한다.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를 맡아서 마음이 일년 내내 괴로웠는데, 놀랍게도 아무 진척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위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나. 표내면서 일을 하라고 말씀들을 하신다. 그게 나를 위해 좋은 거라고도 하신다. 다 맞는 말인데, 사실 난 안 하고 있었다. 이 일을 덜컥 맡아놓고도. 맡아 놓고 방치해두고 있었다. 너무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제 하루 분노로 들끓고 났더니, 오늘 마음이 한결 가벼운 거다. 분노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업무를 들여다보는데, 마음이 새롭다. 오호, 이게 무슨 일일까. 조울증인가. 


 그래서 업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재미가 있다. 폭풍과 큰 비가 내리고 나서 맑게 개인 하늘처럼, 내 마음도 그런건가.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조금 보인다. 허허 이게 무슨 조화일까. 어제까지는 앞이 깜깜하고 막막해서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았는데, 암튼 신기하다. 


 그렇게 한 고비를 지났나보다. 예전과 무슨 차이일까. 


 어제의 나를 다시 돌아보자. 어제는 신경질과 짜증과 분노의 종합선물세트였다. 그래서 이 마음을 어쩌지 하다가 과자를 먹었다. 동료에게 다른 동료 뒷담화를 했다-며칠 동안 쌓였던 게 있었다. 그리고 잘 참다가, 저녁에 가서 폭풍 식사를 했다. 남편이 밥을 해 놓았었다. 맛있게 밥을 먹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밥맛이 있었다. 그리고 배가 불렀지만, 먹고 싶은 대로 또 간식을 먹었다. 평상시에는 참았을 일이다. 그리고 시원하게 아이스티를 마셨다. 이것도 평상시에는 참았을 일이다. 그리고는 추운 침대가 아니라, 뜨듯한 전기장판에 누워서 티비를 1시간 넘게 보다가 막내와 함께 잠을 잤다. 이건 좀 망설였다. 고양이들 때문에. 고양이들이 거실을 날라다닌다. 그렇지만, 예상보다는 많이 깨진 않았다.  


 자, 생각을 해 보자. 여기 어느 지점에서 나는 기분이 괜찮아진 걸까. 저녁을 누가 대신 차려줘서? 저녁밥을 든든하게 먹어서? 따뜻하게 잠을 자서? 오랜만에 누워서 티비를 봐서? 


 흠. 이런 데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마는, 정답을 맞추기가 어렵다. 모두 다인가? 그런데 이 저녁을 잊지 않아야겠다. 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겠다. 남편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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