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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Dec 05. 2023

차별을 당한다는 것

관찰자 효과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알면서도 바란다. 알면서도 애를 쓴다. 사랑받으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보고, 속여도 보지만, 안 괜찮은가보다. 힘들다. 왜 나를 미워하지? 왜 나를 싫어하지? 그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을 거다. 애매하고 불확실한 이유라도. 


 파장이 안 맞든지, 사주가 안 맞든지, 성향이 안 맞든지, 이유야 얼마나 많은가.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싫은 걸 수도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들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책상에 앉았다. 슬프게도 오늘은 커피가 똑 떨어져서 맨 몸으로 앉았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뭔가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존재이니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위로해주지 않아도 글쓰기는 나에게 위로를 준다. 


 나도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느낌이 별로인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함부로 취급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싫어도 웃는다. 마음에 안 들어도 친절한 미소를 보낸다. 직장이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면, 억울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렇게 애를 쓰는데,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할까. 세상은, 사람은 내 맘같지 않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상처를 받았다. 상처받았다고 표를 좀 낼까. 


 표를 내는 것도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 그때 바로 표를 내야지, 시간 지나서 말하면 좀 없어보이지 않나. 예전에 개그우먼 김숙이 그랬다. 어, 이거 마상인데, 자기는 바로 말을 했다고. 


 하. 적다보니, 현타가 온다. 바라지 말고 그냥 해 주어야지, 해 주면서 바라니까 그렇게 속상한 거라고 내가 비난했던(속으로) 사람들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바라지 않았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는데? 상처받았다면, 내가 바랐다는 뜻 아닌가? 


 맞다. 바랐다. 나도 내가 하는 것만큼 똑같이 친절한 대접이 받고 싶었다. 나를 더 챙겨달라는 것은 아닌데, 남들하고 비슷하게 대접해주면 좋겠다. 차별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또 그게 되겠나. 차별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도 차별을 한다. 나도 모르게 하는 차별은 더 많을 것이다. 


 나는 거대한 우주 속의 점과 같은 존재다. 관찰자 효과를 써먹을 때다. 관찰자 효과 관찰자 효과..

어제 읽었던 <명상록>에서는 이런 글을 보았다.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 


 모든 기억을 잃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기억과 마음은 옅어져 가는 속도가 좀 더 빨랐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다른 업무로 넘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 사람과 그의 기억을 그만 보내 주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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