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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Dec 07. 2023

남편은 촉이 좋다

그런데 주식은 왜 그 모양이지?

 남편은 촉이 좋다. 그런데 왜 주식은 잘 안 된 것일까. 


 어제 저녁, 외출하고 들어오는 길에 갑자기 큰애가 아직 안들어왔을 것 같다며, 큰애한테 전화를 거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어디냐고 물으니, 친구 집이란다.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라, 어두워진 시간이고, 우리가 데리러가겠노라고 했다. 친구집에서 무슨 정신인지 자다일어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딸도 마음에 안 드는데, 거기까지 데리러 가 준다고? 나는 이 사람이 뭐하나 싶었다. 하긴, 이 딸래미는 버스를 타고도 잠을 자다가 종종 정류장을 놓쳐서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전화를 하곤 한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데리러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거의 도착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천둥번개는 쳤는데, 아, 그래서 남편이 데리러간다고 그랬구나 싶었다. 그리고 딸래미가 차에 탄 순간부터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눈 알갱이가 차 유리를 마구 때리며 쏟아졌다. 얼매나 놀랬던지. 바깥에 사람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와, 이 시간에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아찔했다. 


 절묘하게 큰딸을 태우고 우박을 피해 근처 다이소 매장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마침 뽁뽁이를 살 참이었다며 지금 사오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차에서 기다리고 남편이 뽁뽁이를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니 우박은 그쳐 있었고,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각 방의 창문마다 뽁뽁이를 붙이고 훨씬 따뜻하지 않냐며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따뜻하네, 하고 무심하게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참 신기한 거다. 


 나는 감이 없다. 대체로 무감각한 편인데 무슨 감이 있겠나. 여자는 육감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남편은 기분이 싸한데, 하는 때가 있다. 또 이건 될 것 같애 하기도 한다. 그럼 된다. 그런데 주식은 처음에는 좀 맞는 듯 하더니, 이제는 다 퍼런 색깔들 뿐이다. 교만하지 말라고 그러는 건가. 


 세상 일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져 있고, 진행되고 있고, 어느 것 하나 순탄한 것이 없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내 생각도 다 맞는 게 아니고, 틀려서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한번씩 내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그러면 재빨리 하나씩 하자, 차근차근 스스로 주문을 외운다. 그러면 좀 가벼워진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고 인생인데, 촉도 감도 없는 사람에겐 너무 불리하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다 가끔 보면 운이 좋은 사람도 있다. 다행히 나는 지금 내 인생의 두번째 대운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주 놀랍게도 운이 좋은 경험을 여러번 하긴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 대운의 시작 즈음에 난생 처음으로 응모권에 1등으로 당첨이 되었고-상품이 가족 식사권이었다-, 그 다음해 취직이 되었고, 몇년째 잘 버티고 있다. 직장에서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잘 적응했고, 남편이 잘 도와주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로 힘들어서 지지고 볶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이번의 10년 대운이 지나고 나면 더이상 대운은 없다. 끝이다. 그리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명리학은 사주 팔자에 늘 좋은 것도 늘 나쁜 것도 없다고 하지만, 뭔가 안 좋다는 얘기를 들으면 별로 좋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이 내 전성기다. 앞으로의 오륙년 남짓 남은 시기가 내 전성기이고, 그 다음부턴 조심조심 잘 살아야한다. 내 사주에는 물이 하나도 없어서 크게 장수할 것 같지도 않다. 난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보니, 나도 혹시 걸릴지 모르겠고, 그렇다면 너무 오래 살면 가족에게 너무 피해를 주게 되니까.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그냥 빨리 천국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치매에 걸려도 잘 돌봐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난 거절이다. 내 그런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도 싫고, 사랑하는 내 가족이 점점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것은 더 싫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나는 그냥 괜찮은 요양 병원에 보내주면 된다. 안 좋은 요양병원이라 해도 할 수 없다.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해도 나는 기억도 못할 텐데, 무슨 상관인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를 일인데, 불행한 미래 얘기를 생각하니 좀 우울해졌다. 


 남편은 잔병이 있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 것 같다. 당신의 좋은 촉과 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오래 사시오~ 나는 사는 날 동안 행복하게 살 테니. 당신의 행복한 모습을 많이 보는 게 내 소원이오~ 지금은 주식이 온통 퍼렇지만, 언젠가는 또 벌개질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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