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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Dec 14. 2023

직장 내 억울한 일이 발생하면

말을 해야 하나..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늘 마음이 문제다.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난 마음에 있는 걸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인가보다. 잘 참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말하지 않고 있으려니 그래서인지 자꾸 화가 난다. 뿔따구가 난다. 진짜 내 머리에서 뿔이 솟아오를 것만 같다. 


 직장에서 성희롱? 비스무리한 일을 당하면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일을 보고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하시겠지. 근데 자꾸 화가 난다. 뭘 해야 내가 더이상 그 일에 휘둘리지 않을까.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놀란 가슴에 친정엄마한테 이 일을 털어놓았더니, 엄마는 절대로 0서방한테는 이 이야기를 하지 말란다. 파파 할머니가 되어서나 말하란다. 이야기하면 이제 나는 직장 못 다닐 거란다. 다니더라도 매일 스트레스를 주겠지. 지금도 야근할 때마다 구박을 주는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서 주말동안 힘들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마음은 딴 데 가 있고, 오늘 아침 출근해서도 마음이 괴롭다. 그 사람 뒷통수를 보니 화가 나고. 


 사실 아무일도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생채기가 났나보다. 이 일을 알게 되면 다른 직장 동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전혀 모르겠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고, 가해자가 강제 전학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피해자가 전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런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분명 안타까운 사정일 것이다.  


  피해를 입어도 밝힐 수 없는 때가 더 많지 않을까. 교실 안에서의 미묘한 감정적 폭력, 미세한 따돌림. 그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상처입은 사람은 있지만, 상처준 증거는 찾을 수가 없다. 특히 마음의 상처는 더 찾기가 어렵다. 결국 피해자는 또다른 피해를 입으며 사건은 종결될 것이다. 


 나는 억울한가보다. 내가 계약직이라서 할 말 다 못하고 참는 게 일상이 되었고, 무리한 업무적 요구에도,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그저 웃고 수긍해야 하는 것일까. 다 그렇게 살겠지만, 오늘은 좀 힘들다.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돈의 굴레, 지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부동산을 공부하고, 영끌을 하고, 주식을 한 것 아닌가. 그런데 나의 그릇은 정해져 있고, 내가 이런 일을 당해도 아무말 못하는 것도 나에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 


 속상하다. 결국 벗어날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의 굴레가 답답해서 미치겠다. 그래, 어쩔 수 없지 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그렇게 그 안에서 감사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인가. 그게 진짜 잘 사는 것인가. 


 어린 시절 학대를 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을 치료할 때, 그 상황을 떠올리게 했더니, 환자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동작을 하더란다. 그렇게 한참을 발버둥치고나서야 잠잠해졌고, 그 시간 이후로 트라우마는 사라졌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공포와 고통의 에너지가 어린시절 그 기억부터 현재까지 가슴 어딘가에 꽉 들어 있어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가 치료를 계기로 분출이 되었고, 그제서야 그 기억에서 해방되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게도 어느정도의 고통의 기억과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화가 난다. 눈물도 나고. 


 나에게 필요한 건 승화다. 투사도, 반동형성도 아니고, 웃음으로 승화하든지, 업무적으로 승화시키든지 건전한 곳으로 내 에너지를 분출해야 한다. 더이상 원망 불평만 늘어놓지 말고 즐겁게 살아야 하니까. 이제 그만 그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근을 했지만,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말했다가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비밀처럼 이야기해도 비밀은 없다. 나도 비밀을 털어놓았다가 작년에 크게 당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당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털어놔야겠다. 이 답답한 가슴으로 지내다가는 병이 들 것 같다.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이걸 용기라고 부르는 것은 맞을까. 사실 아무일도 아닌데,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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