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향기 Dec 15. 2023

나에게 힐링이 되는

시간

 나에게 가장 힐링이 되는 시간이 몇 가지 있다. 


 퇴근 후 집안일을 모두 끝내고 잠자리에 눕는 시간. 정말 달콤하다.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워 핸드폰으로 뉴스 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숙면을 취하려면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보지 않는 게 좋다는데, 그 즐거움이 너무 커서 어느새 보면 또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거나 뉴스를 검색하거나, 그러면서 내 마음을 달래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핸드폰을 끄고 스탠드도 끄고 잠이 든다. 


 또 최근에 참 행복하다 느낀 순간이 있었다. 얼마전 야간 심화반 수업 때 학생들과 함께 이번 수능 문제를 풀어보았다. 해설이 없이 정답만 가지고 풀었는데, 한 지문에 달린 네 다섯개 문제를 풀고 다 같이 고민을 시작했다. 해설이 없으니까 왜 그게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고, 함께 궁리를 한 것이다. 잘 하는 아이들이라 많이 맞추었지만, 틀린 문제도 있었고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아갔다. 나도 틀린 문제가 있었고, 진땀나는 때도 있었지만, 정답을 통해 왜 그게 답인지 추리해 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 수업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데, 가슴이 꽉 채워지는 행복감이 들었다. 참 좋다. 참 행복하다.


 나는 내가 선생 일을 이렇게 좋아할지 몰랐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재밌을지 전혀 몰랐다. 함께 진리를 탐구하고, 이야기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와, 너는 이런 생각도 했어? 하고 놀라고, 나도 뜻밖의 깨달음을 얻으면 또 그게 좋고, 그걸 나누면 더 즐거워진다. 


 방과후엔 현대소설 읽기 수업을 하는데, 그것도 참 좋다. 처음에 이 과정을 개설할 때 고민이 좀 있었다. 나는 재밌는데, 과연 아이들도 이걸 재밌어할까. 딱 생각만큼 신청숫자가 들어왔고, 그 아이들 중에서도 몇몇은 지루했는지,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남은 아이가 10명. 그런데 이 아이들은 뜻밖에도 재밌다는 소감을 들려주었다. 처음 이 수업을 시작할 때도, 중간중간 아이들이 이탈할 때에도, 나는 그랬다. 괜히 미안하고, 나만 즐거운 일을 시키는 건 아닌가 싶어서, 계속 이렇게 수업해도 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곧 수업이 끝날 것이 아쉽단다. 그렇구나. 대부분은 지루해 하는 수업도 누군가에게는 즐거울 수 있구나. 나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이 있구나 싶었다. 


 나답게 살기로 한 뒤부터 조금씩, 하나씩 내가 원하는 대로 뭔갈 시도해 보고 있다. 내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맞춰서 별 탈없이 큰 문제 없이 잘 묻어서 좋게 좋게 가고 싶었는데, 나이가 드니 내 색깔을 드러내고 싶은 거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어쩌다 관심이 있어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도 하다. 


 나는 평생 선생을 할 수 있을까. 기간제교사로 졍년까지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 다른 진로를 찾아놓아야 한다. 계속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 


 어쩌면 이거라도 찾은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먹고 살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학기가 마쳐가니, 생기부 쓰느라 미쳐돌아갈 지경이지만, 순간 순간 이 아이들과 또 헤어질 생각에 마음이 슬프다. 저것들은 모르겠지. ㅎㅎ 이별이 슬프다. 내가 이 학교에 계속 있을지도 알 수 없고, 이 아이들을 내년에 또 가르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고. 우리 반 아이들과는 헤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벌써 슬프다. 


 떠나는 쪽과 남는 쪽, 어디가 더 슬프고 힘들까. 남는 쪽인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교체되면 자연스럽게 서로 떠나게 되니까 그나마 더 나은데. 그만 생각해야겠다. 아니다.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이 귀여운 아이들을 보내려면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충분히 감상에 빠져서 슬픔을 흘려 보내고, 또 일을 하자. 


 감정을 가두어두면 안 된다. 흘려 보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날을 맞이해야 한다. 새롭게 아이들을 또 마주하고, 조금씩 슬픔을 흘려보내고, 반복해서 그 작업을 하다보면, 정말 헤어지는 날에 조금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줄 수 있을 거다. 


 다들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텐데, 별 걱정을 다 하고 있다. 생기부 작업이 많이 남았는데, 다시 일로 돌아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 내 억울한 일이 발생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