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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Dec 20. 2023

한파로 패딩을 사러 갔어요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경제 교육을 어찌 시켜야 할까? 


 아이들이 어릴 땐 빠듯한 살림에 철마다 나 혼자 가서 아이들 옷을 골라오곤 했다. 아이들과 같이 가면 예쁜 것을 찾으니까, 나 혼자 가서 가장 저렴한 것들을 골라 왔었다. 아이들도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셋째가 네 살이 되던 해부터 어떤 옷은 입지 않겠다고 떼를 부리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쳐 보았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다른 데서는 고집부리는 게 없는데, 유독 옷에만은 똥고집을 부렸다. 여러 차례 고생을 하다보니, 나도 포기하고 셋째 옷은 데려가서 직접 고르게 했다. 다행히 비싼 것을 사달라고 하진 않았기 때문에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고, 첫째 둘째가 사춘기가 되니, 옷은 직접 산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참 고르고 사다가, 가끔 내가 같이 갈 때는 매장에서 힘겹게 옷을 고른다. 쓸 수 있는 비용은 제한되어 있으니 마음 편하게 고르지를 못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첫째는 그냥 저냥 대충 넘어가는데, 둘째는 짜증을 부린다. 


 맞다. 둘째는 예민한 아이다. 유아기부터 짜증이 남달랐다. 그래도 옷에는 투정이 없었는데, 사춘기가 되다보니 외모에 신경을 무지 쓴다.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기 시작했으며, 엄마도 안 해본 뿌리 볼륨 파마도 하고-미용실 원장님과 친해졌다고 자랑을 하고, 엄마한테나 잘 할 것이지- 온갖 화장에, 얼마전엔 필라테스까지, 어마어마하다.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나와 실랑이를 하고, 나는 격변의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아이와 싸워도 늘 지는 건 나다. 나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아이가 둘째다. 


 언니는 하지 못했던 것을 둘째가 경계를 허물고, 첫째도 그 혜택을 지금은 같이 누리고 있다. 귀가 시간은 9시, 10시가 되었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올 수 있게 되었으며, 혼자 있을 때에도 배달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1인분을 시켜먹다니! 배달비가 더 나오겠다.-, 화장품 살 돈과 옷 살 돈을 따로 지급하며, 때로는 친구들과 갑자기 생긴 약속에 용돈을 추가로 주기도 한다. 


 그런데 더한 아이가 나타났다. 막내는 둘째의 짜증과 셋째의 고집과 첫째의 영리함을 갖춘, 독보적인 아이다. 위의 세 아이는 슈퍼에 뭘 사러 가도 하나만 골라. 하면 말 잘 듣는 아이들이었는데, 막내는 얼마치 사면 돼? 하고 먼저 묻는다. 그러면 한 개가 아니라 두개가 되기도 하고, 세개가 되기도 한다. 이미 한개의 마법이 무너졌다. 그러면 다음번엔 이거 하나만 더 사면 안 돼? 하고 또 경계를 무너뜨린다. 자신의 귀여움을 무기삼아 애교를 부리고 조르고. 그런데 이상한 건 나다. 막내에게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래, 하고 허용을 해 준다. 남편은 더 심하다.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조절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남편한테만 가면 막내는 원하는 모든 것을 거의 얻는 듯 하다. 그리고 엄마가 집에 오면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아빠는 내몰라라 하고. 그러면 남편은 서운해서 내일은 아빠 찾지마라 그런다. 


 막내도 셋째처럼 주는 대로 옷을 입지 않았다. 절대로 안 입을 걸 아니, 마음을 접고 재빨리 환불해 오는 쪽을 택한다. 어제 패딩을 사러 가서 막내는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였다.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진한 색의 청바지에 흰 티에 알록달록 조끼로 한 벌이 전시되어 있는 것에 꽂혔다. 그런데 그 스타일은 집에도 한 벌 있다. 그래서 나는 협상을 시작했다. 00아, 운동화도 사야 하지 않아? 그러려면 엄마 돈이 모자랄 수도 있는데. 그러자 아이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엄마한테 미안하니까 이거 대신에 저거로 할게. 하고 내가 골랐던 한 벌 세트 저렴이를 할 수 없이 선택한다. 


 후~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한테 그랬었다. 00아, 언니들은 다 커서 좋은 거 사도 오래 입겠지만, 너는 키가 쑥쑥 크니까 내년에는 이 옷을 못 입을 거야. 그런데 비싸고 좋은 거 살 필요가 있어? 그냥 따뜻하고 편하면 되지. 나한텐 너무나 합리적인 설명인데, 아이한테 얼마나 먹혔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막내는 패딩과 운동화와 저렴이 따뜻 세트 2벌을 얻었다. 


 남편은 싼 거 사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럼 어쩌란 말인가? 지금도 네 아이에게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학원을 안 다녀서 그나마 가능한 거지, 우리는 이미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다. 


 세상에 옷도 넘쳐나고 물건도 넘쳐나는데, 결국엔 다 쓰레기가 될 건데, 굳이 비싸고 좋은 거를 하나 더 살 필요가 있을까? 나도 옷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바쁘다보니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되었다. 이쁜 거 고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것이다. 그 영역에서 삶의 재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다. 더 가치 있는 즐거움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거다. 나는 일하는 게 좋고 즐거우니까. 늘 시간이 모자라다. 


 이름 있는 메이커의 패딩을 사고 싶다고 둘째는 말했지만, 결국 나의 기세에 밀려 보통의 메이커의 패딩을 골랐다. 다행히도 마음에 든단다. 친구들이 그 옷은 어디 제품이냐고 묻는다지만, 그럴 때는 당당하게 말하라고 알려줬다. 우리엄마가 안 사준대. 라고. 주눅들 필요 없다고. 엄마가 안 된다는 데 어쩔건가. 그런데 어떤 친구는 엄마가 안 사줘서 가출하는 경우도 있단다. 허걱. 너무 놀랐다. 내 아이가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가? 첫째는 그 환경에서 어떻게 버텼지? 


 언젠가 찾아오지 않을까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메이커를 따지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건 허영이라고 말해주면 알까? 아니면 한번쯤은 그런 비싼 옷도 사 줘 봐야 하는 걸까? 항상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절약은 해도, 검소하게 살아도 좋은 옷 한 벌쯤은 있어도 된다고 해야 할까? 내가 내 가난의 굴레 안에 아이들도 가두는 것일까? 


 어떤 책에서는 부자처럼 생각해야 부자가 된다고 하던데, 실제로 부자들은 다 검소하지 않나? 자기 재산 규모에 비해서 검소한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쓸데 없는 데 돈을 쓰는 건 딱 질색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이 행복하려면 쓸데 없어 보이는 일들에도 돈을 좀 써야 한다. 이번 겨울에 처음 설치된, 우리집 성탄 트리처럼 말이다. 성탄 노래를 틀어놓고 아이들과 남편이 얼마나 즐겁게 만들던지. 반짝이는 것들이 때로 필요하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돈은? 그 비용은? 남편은 얼마 안 된다고 했지만, 내가 슬쩍 보기에도 5만원은 들어간 것 같았다. 그냥 서로 돈 쓰고 싶은 영역이 다른 것일 거다. 그래서 이번 달도 제발 적자만 나지 않기를, 하고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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