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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Dec 21. 2023

먹는 약에 대한 고찰

건강하자

 어제 야근을 하고 집에 갔더니, 첫째가 많이 아픈 상태였다. 그런데 내일 학교 갈 거라고 목욕 중이란다? 제정신? 이미 시작한 목욕을 중단시킬 수도 없고 내버려두었다. 저녁에 약을 먹어서 그런지 좀 낫다고 했다. 


 그런데 약을 보니, 약 개수가 너무 많은 거다. 6알? 그리고 따로 해열진통제가 또 있고. 뭐지? 독감, 코로나 검사해 보니 음성이 나왔고, 그러면 그냥 감기 아닌가? 항생제가 하나, 기침가래약 두 종류, 소염제인가? 두 종류, 소화제 비스무리한 거 하나. 약 먹다가 더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다 먹여야 하나.


 한때 아이에게 백신 접종 안 시키는 엄마들이 있었다. 지금도 있겠지만, 그땐 나도 아이들 먹이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때라 없는 살림에 자연드림도 가 보고 한살림도 가보고 그럴 때다. 지금은 안 간다. 온갖 패스트푸드와 배달음식을 먹이고 있다. 그래도 계란은 왠지 동물복지 계란만 먹는다. 밖에선 모든 달걀을 주는 대로 먹으면서..


 그래서 나도 백신을 맞히지 말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겁이 나서 실행하지는 못했다. 부작용도 분명 있겠지만, 또 정부의 음모랄까 그런 것도 있을 수도 있지만, 그냥 권장된 매뉴얼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모든 예방접종을 다 맞히고, 첫째 자궁경부암 백신도 고민하다가 결국 맞혔다. 


 의사는 첫째에게 중국발 무슨 질병일지 모른다고 얘기했다고 하니, 강한 처방에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감기몸살일 수도 있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몸에 무리가 더 가는 것 아닐까 부모입장에선 염려가 된다. 


 작년에 내가 감기몸살로 아파서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는데, 몇알 안 되는 그 약을 먹고 며칠간 몸이 퉁퉁 부은 적이 있었다. 이상이 있더라도 하루 지나면 빠지던 붓기가 며칠을 가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분명 약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붓기가 빠지면서 소변 양이 엄청 늘었다. 신장에 무리가 갔던 것이리라 혼자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었다. 


 몸의 작은 변화와 통증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그때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고 하면 큰 병에 걸릴 확률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경우도 있더라. 나의 작은 고모는 소화가 잘 안 되어서 동네 병원을 자주 가고 약도 자주 먹었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결국 간암이 많이 진행되고 나서야 동네 병원에서 알아차리고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해줘서 그제서야 정확한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지만, 결국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병이든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하는가보다. 


 올해 나는 건강 검사에서 당뇨가 의심되어 추가 피검사를 해야 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동안은 음식에 신경을 쓰며 건강해지면 다시 피검사해야지 하고 있다가, 어느새 식단은 좋지 않은 패턴으로 돌아왔고, 피검사도 아직 하지 못한 상태다. 혹시나 정말로 당뇨 진단을 받을까 겁이 나서 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귀찮은 것도 있고. 


 건강한 게 최고라고 하는데, 아프면 다 소용없는데. 우선순위를 정할 때 중요한 일을 급한 일보다 우선시하라고 하지만, 바쁜 40대가 자기 건강을 먼저 챙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신경쓰일 만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신경 쓸 만한 일이 생기는 건 안 될 일이고. 


 지금은 아프면 안 된다. 다행히 지금은 안 아프다. 옆의 동료들이 아파서 결근을 하고, 아이들이 차례로 아프고 해도 나는 안 아프다. 해마다 이맘쯤에 했던 기침도 별로 없다. 뭐지? 건강해진 건가? 한번씩 급체하는 것 외에는 건강한 편이다. 그렇게 쭉 비실비실하게 건강하게 사는 게 내 목표였는데.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신 이후로는 나에게도 치매 시한폭탄이 달려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어차피 길게 살 수 없다면, 사는 동안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시간이 아깝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어제도 오늘도 동료들의 말에 상처받는 순간이 있었지만-나는 여자와는 안 맞나보다. 남자도 그닥이긴 하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거기서 싸우면 뭐가 더 있겠나. 창피만 당할 뿐이다. 그냥 빨리 벗어 던지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 한다. 그 와중에도 혼자 슬퍼하고 속상해하는 과정도 꼭 필요하고. 내 마음도 돌봐줘야 하니까. 돌봐주지 않고 넘어가면 쌓이고 눈덩이가 된다. 그럼 더 골치아파진다. 내 약의 개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사치이자 힐링의 시간이라 누가 내 멱살을 잡지 않는 이상 이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야겠다.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야근까지 열심히 달려보자. 

 귀한 인생이다. 오늘 하루도 지금 이 시간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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