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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Dec 26. 2023

부부싸움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남편은 크게 화를 냈다. 또.


 절망적이었다. 사실 지금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지난 추석 즈음의 황금 연휴 때도 그랬고, 지난 여름 열흘이나 되는 휴가 때에도 삼분의 일은 남편이 화를 내느라 가족 모두 아무것도 못하고 붙잡혀 있어야 했다. 


 언제나 서운한 게 쌓여서 폭발을 하기 때문에, 서운하지 않게 하려고 애를 많이 쓴다.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불안해 하면서. 그런데도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결국 또 다시 폭발했다. 화가 나면 눈빛이 달라지고 말이 안 통한다. 어떤 말에도 꼬투리를 잡아서 화를 내니까. 결국 입을 닫고 앉아서 듣기만 하는 상태로 만들어놓고 30분, 1시간, 2시간 그동안의 서운하고 힘들었던 것들을 쏟아낸다. 이사 오기 전에는 밤중에 나한테만 그러더니, 이사오고 나서부터는 아이들까지 다 불러모아 앉혀놓고 일장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버럭 소리지르고 물건을 확 던지는 것에서부터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이 문제였다. 순하고 조용한 아빠 덕에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철없게 살다가 결혼하고부터는 아빠와 비슷하게 겁도 많고 여리지만 속에 호랑이가 한 마리 들어앉은 남편 눈치를 끊임없이 봐야만 했다. 맞다. 호랑이다. 그것도 상처를 여기저기 많이 입어서 잔뜩 성이 난 호랑이. 화났을 때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살기가 느껴진다. 그런 상태로 물건이라도 집어던지면, 나는 공포로 얼어붙고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들쳐업고 도망을 갔다. 친정으로 가출을 한 것이다. 


 부끄럽고 엄마한테 미안하지만, 매번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치매 환자인 아빠를 힘겹게 돌보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시댁에 전화를 한다. 뭐 듣기 좋은 소리겠냐마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딘가에는 말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남편의 화난 것을 인지한 순간 나는 공포와 불안으로 이성을 잃어버린다. 나도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지켜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겠나. 하지만 나는 내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맞서서 싸운다. 그게 더 안 좋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다. 


 예전에 알던 사람이 자기 딸이 정신 분열증이 와서 사고를 치고 다닌다고 했었다. 사고를 수습하는 와중에 그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왜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자기가 생각해보니 아이가 어렸을 때 남편이 너무 무서웠단다. 남편이 화를 내면 자기가 무서워하던 장면을 아이가 너무 많이 봐서 그 충격으로 그런 병을 얻은 것이 아닐까 한다고 했었다. 나도 한창 남편과 싸우던 중이었는데, 그래서 무서웠지만 무서운 티를 안 내려고 같이 더 화를 냈었다. 기죽지 않으려고 악을 썼다. 같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던데, 나는 남편보다 내 아이들이 더 걱정스러웠다. 정신병보다는 상처가 나을 것 같아서.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화를 내면 도망칠 곳도 없고 정말 무서웠기 때문에 빌기도 했다. 그리고 낮에는 나도 같이 화를 내고. 이쯤되면 나도 그 분노에 전염이 되어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일주일 넘게 걸려 화가 풀리던 것이 삼사일이 걸리다가, 이제는 이틀로 줄었다. 남편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그래서 남편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글쎄다. 매번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절망하고 또 희망을 가졌다가 절망하고. 지난번엔 남편은 얼마든지 또 화를 낼 거라는 사실을 그만 받아들이고 내가 튼튼해지기로 마음먹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는데, 이번에 내가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다. 


 다 그만두자고 아이들 앞에서 모진 말을 쏟아냈다. 내가 떠날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남편은 이제는 떠나도 괜찮다고 한다. 말로는. 그러나 과연 괜찮을까. 하지만 괜찮든 안 괜찮든 이제 신경도 별로 안 쓰인다. 다만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인생도 그리 길지 않은데, 이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 맞을까. 고통의 총량과 행복의 총량을 따져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아이들을 위해서 어느정도 내 인생을 여기에 희생해야 할까.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다음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만, 나는 깊이 절망했고 사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집에 들어오긴 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헤어질 생각은 없는 걸까. 


 집에는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마음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힘들고 눈물나고 서럽고...


 그리고 오늘 인생 선배와 밥을 먹으면서 그 분 이야기를 들으니, 그 분도 힘든 결혼 생활을 했고, 모진 말도 많이 했다고 하신다. 그런데 나중 되니까 그 때 버틴 게 잘 했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그러니까 죽을 힘을 다해 버티라고. 처음엔 반감이 들었지만, 그분의 이 말이 내 감정의 질주를 멈추게 했다. 


"알고 보니까 나도 잘못한 게 있더라고."


 맞다. 나도 그랬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내 잘못을 깨닫고 남편에게 잘해주고 남편이 화를 내도 내가 참아주기로 그래서 마음 먹었던 거였는데. 깡그리 잊고 있었다. 그때 나도 저 말을 했었는데, 왜 모두 잊어버린 걸까. 왜 다시 원상복귀된 걸까.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나보다. 그때 나도 잘못이 있었다고 깨닫고 성인군자와 같은 마음을 살짝 가졌다고 기고만장했었나보다. 이렇게 금방 또 좁쌀같은 마음이 되어 버릴 줄도 모르고. 다시 약을 먹어야 하나. 약 안 먹고 잘 버티고 있었고, 잘못하지 않으려고 소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착각이었나. 행복해지려면 이 과정을 버텨내려면 결국 또 약을 먹어야 하나. 그런데 이 약을 먹는 건 왜 이리 힘들까. 매번. 이런 큰 고통이 찾아와서야만 약에 굴복하는 걸까. 


 약을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외부의 어떤 것이 나를 조종하는 느낌이 들고 내 정신과 육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불쾌하다. 내 자신이 바보천치같은 생각도 든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또 약 앞에서 고민을 할 것이다. 그 생각의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전까지는 안 먹지 싶다. 기준점을 확 넘어가지 않는 한. 


그래서 남편부터 약을 챙겨 먹였다. 나는 비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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