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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Jan 29. 2024

반갑다 브런치야

고마워

 최근 장나라가 출연하는 <나의 해피엔드>를 재밌게 보고 있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왜곡된 기억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이야기다. 숨겨진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재미가 있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 사실은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때마다 원망하고 복수를 결심했다가 다른 새로운 기억이 떠오르면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런 장애가 없어도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이 왜곡되어 있지 않나. 나는 우울한 편이고, 불안 증상도 있다. 일상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때때로 피해를 준다. 신경질과 짜증 같은 것들이 그렇다. 안 그런 사람도 있더라마는,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서 마음이 괴롭다. 평범한 일상인데, 문득 쳐다본 사물과 연관된 나의 나쁜 기억, 대개는 내가 잘못했거나 내가 창피당했던 기억이 나를 파고들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아주 과거의 일들인데, 그 과거가 현재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날만 이불킥하면 될 것을 내 머릿속에서는 일년에 몇 차례씩 그 기억을 재생하고 다시 이불킥을 하게 된다. 안 그러고 싶은데 그렇게 된다. 다 나같은 줄 알았더니, 물어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단다. 이것도 우울의 증상일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누가 갑자기 내 뒤통수 때리는 것처럼. 그러면 나는 그때의 내가 한심해서 한숨이 나오고, 기분이 좋지 않다. 힘이 빠진다. 그러면 가족들한테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다. 하지만 이제 이걸 분명히 알게 된 이상,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런 기억이 나를 찾아올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까 나는 그 때가 되면 정신 차렷! 하는 거다. 현실로 현재로 돌아와서 다시 리셋하고 가족들을 마주해야 한다. 레드썬! 하듯이. 


 남편은 주식 때문에 계속 힘들어하고 있다. 잠깐 상승했던 것들이 이제는 줄줄이 하락세라고 한다. 언제 다시 오를지 기미도 안 보이고, 3월은 되어야 한다나. 어떤 날은 괜찮다가도, 어떤 날은 미치도록 괴로워한다. 어젯밤에는 밤 10시가 넘었는데, 큰 소리로 막내를 불러서 깜짝 놀랬다. 그리고는 무슨 노래를 부르는데,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셨지만, 마치 술 마신 사람 같았다. 물어보니 마음이 많이 힘들단다. 사람들이 왜 주식 땜에 한강을 찾아가는지 알겠다면서. 


 얼마나 힘들까 나는 가늠이 안 된다. 지금은 떨어져도 언젠가는 오르겠지.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남편은 상승세를 탈 때 그때 팔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되어서 괴롭단다. 그때를 놓친 게 너무 후회가 된다고 한다. 이럴 때 나는 무감각해진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사실 정말 공감이 안 된다. 공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닌 게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저질러진 일 이제 그만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른 챕터로 넘어가면 좋겠는데, 몇날 며칠 그 소리다. 너무 후회가 된다고. 

 

 나의 초점은 항상 다른 데 있다. 남편이 분노발작하지 않는 것. 이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유지되는 것. 그래서 늘 남편 상태를 살피지만, 정작 남편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는다. 잘 안 된다. 그저 남편이 더이상 힘들지 않고 화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다른 일은 크게 중요하지가 않다. 그래서 그 사람 마음에는 공감이 안 되는 걸까. 나 보호하기가 바빠서?


 그런 면에서 나는 이기적이다. 나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니까. 나의 선택은 언제나 나 자신이 먼저다. 내가 괴로운 일은 싫다.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사실은 그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니까다. 자기중심적인가. 


 자기중심적인 마음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마음 사이 그 어디쯤에서 나는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이기고, 어떤 때는 희생정신이 더 발휘된다. 그 경계를 왔다갔다 하는 걸거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더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내 마음에는 사랑이 조금뿐이라서 늘 미안하다. 이렇게 무감각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게 하나님은 남편에다가 아이를 넷이나 주시고, 급기야는 고양이 세 마리까지 얹어주셨다. 어떤 때는 잘 할 자신이 없어서 숨이 막히다가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복을 주신 것 같아 또 감사하고.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그래도 잘 살아야지, 잘 살아봐야지 내 마음을 도닥이고 그러면 또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렇게 내 마음을 돌봐줘야 하는구나. 한동안 브런치 글을 안 썼더니, 내 마음을 살펴볼 시간이 없었나보다. 

반갑다 브런치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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