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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Feb 07. 2024

재미있는 일을 하자

그게 운명이다

 뭐든 재미있을 때 해야 한다. 언젠가 재미없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요즘 아침마다 남편의 얼굴을 치료해주고 있다. 사실 몇 개 안 되면 본인더러 하라고 할 텐데, 20개 정도 되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하게 되었다. 이걸 드레싱이라고 하는 걸까. 식염수로 상처 부위를 세척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 비스무리한 것을 가위로 모양에 맞게 잘라서 붙여준다. 잘 떨어지는 부위는 반창고를 덧붙여주면 끝이다. 매일 아침 이 작업을 하는데, 처음에는 이게 매일이 될지 몰랐다. 남편 얼굴에 난 혹과 흉터자국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고 나니 이걸 매일 하라고 한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고, 나에게는 무척 귀찮은 일이 당연한데, 어째 매일 이 일이 재미가 있다. 남편을 이렇게라도 챙겨주고, 얼굴을 만져주는 게 평소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애정을 전하는 일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고, 나름 발전하는 나의 솜씨를 확인하는 시간이 즐겁기도 하다. 벌써 열흘째, 실력이 많이 늘었다. 손재주 일도 없는데, 능숙해지는 내 모습이 왠지 뿌듯하다. 이삼주 지나살이 돋아난다고 하니, 이제 한만큼만 하면 매일 하는 치료도 끝이다. 


 방학 때 사주공부를 치열하게 해 보리라 작정했는데, 매일같이 되지는 않고 있다. 운좋게도 설명이 잘 되어 있는 책을 찾았다. 뭔가 이해가 되어갈 때는 엄청 재미있어서 매달리다가, 막히면 또 놓게 된다. 에너지가 부족한가. 이번엔 공망에서 막혔다. 이해가 될 듯 하면서 잘 안 된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는데, 하다가 또 내려놓는다. 일단 핸드폰을 잡으면 핸드폰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걸 알려줘야 하나. 사실 우리 모두는 핸드폰에 중독되어 있고, 그것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내가 핸드폰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처럼, 아이들도 핸드폰으로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는 게 힘드니까. 즐거울 때도 있지만, 더 많은 시간 괴롭지 않나. 아이들은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다. 큰 애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니까 공부에 스트레스가 많고, 둘째도 방학인데 놀고 있는 게 스트레스다. 문제집은 사 놓고 풀지 않는 자기 자신을 매일 쳐다보는 게 괴로울 거다. 셋째는 발로.. 게임에 푹 빠져 있다. 학습지도 하고 피아노학원도 가고 태권도도 가지만 나머지 시간은 거의 발로란트 아니면 핸드폰과 함께다. 심심하니까. 셋째는 심심한 게 확실하다. 심심한 게 스트레스다. 막내는 피아노 학원에서 친구 관계가 틀어졌는지 혼자가 되었다고 울었다. 그 자그마한 세계에도 인간관계가 복잡한가보다. 어제 하루는 쉬라고 했지만, 오늘은 학원에 가라고 말해주었다. 맞닥뜨리기 싫겠지만, 그래도 자기가 겪어나가야 할 일이다.


 핸드폰에 재미난 게 얼마나 많은지, 나도 허우적거리는데, 아이들은 어떻겠나. 며칠 전 모처럼 서점에 들러서 책도 고르고 문구도 골랐다. 그때 산 책은 아직도 거실 소파에 그대로 놓여져 있다. 책 읽기 쉽지 않은 시대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며 경험하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다. 아이들도 그런 경험을 해야 할 텐데. 사주 공부를 하다가 막히면 답답하지만, 다시 몰입해서 하다 보면 깨닫는 지점이 있고, 뭔가 확 열리는 느낌이 있을 때 기분이 좋다. 희열까지는 아니어도 참 즐거움이다. 허울만 있는 자격증도 따 놔야 하겠지만, 진짜 실력이 쌓이고 내가 발전하는 과정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걸 해서 어디에다 써먹겠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기독교인이 말도 안 되게 이런 공부를 하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지금은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니 어쩔 수가 없다. 이것도 내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나는 편인이 세 개나 있다. 정인이 아니고 편인이라는 건 갖추어진 틀 밖의 공부라는 것이다. 내가 사차원인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늘 다른 생각을 하니까. 그걸 누구는 창의성이라 이름붙일지 모르겠지만, 매번 내가 듣는 말은 엉뚱하다, 쓸데 없다는 말들이다. 사주공부도 사실 하등 쓸데없는 일이라 하겠지만,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내 한계를 모르고 뻗쳐나가는 욕심을 멈추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또 사주 공부를 해야 한다. 언젠가는 재미없어질 때가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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