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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pr 26. 2024

안전하고 싶다면

내 안의 무기를 잘 다스리자

 어제 난도질이라는 단어가 나를 붙들었다. 내 안에는 칼이 있구나. 사주에서 신금은 보석이랄 수도 있겠지만, 난도질은 보석이 하는 게 아니니까 칼에 가까울 것이다. 


 현침살이라고 하는 것이 내 사주 안에 여러 개 있다. 이 날카로운 바늘 같은 현침살은 위험하지만 유용하게 쓰자면 용도가 무척 다양하다. 컴퓨터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의사의 수술용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수공업의 다양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요리사의 도구나 화가나 작가의 붓이나 펜이 될 수도 있다.  


 이 날카로운 도구를 선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문제가 발생한다. 남을 해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신체를 해치지 않아도 마음을 해치는 날카로운 독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남편과 자녀들은 대부분 나무와 물이라서 우리 집에서 가장 날카로운 이는 바로 나다. 나의 독설에 맞아 모두 쓰러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업상대체라는 게 있는 걸까. 내 안에 있는 이 날카로움을 어떻게든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게 안 되니까 속에 천불이 난다. 그렇다고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누가 다칠지 모르니까 참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욕구를 적절하게 해소하며 사회에 이로움도 주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군인이나 경찰, 의사, 작가나 요리사, 컴퓨터 전문가 등등.


 어느 책에서 그랬다. 공격 욕구가 있는 사람이 유머를 통해 그 욕구를 해소한다고. 그것이 열정이든 분노든 파괴적인 용도가 아니라 이롭게 되려면 승화를 시켜야 한다. 몸 안에 가득 차서 터질 듯한 분노를 가족에게 폭발시키지 말고 타격감 있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 이별의 슬픔으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 자신을 학대하기보다는 시를 쓰든지 하면 좋으련만. 적다 보니 우습다.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문제가 왜 있겠나.


 내가 지켜본 어떤 이는 너무 힘들 때 혼자 몰래 소주를 드셨고, 아무도 없는 낮에 봉투 안에 그릇을 넣은 채로 깨뜨리셨다. 


 내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어떤 재능이 있는지 그리고 그릇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안다면 세상 살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다.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우습지만, 나를 알아가는 건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일인 듯하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 배운 교훈대로 일찍 귀가하지 않기로 했다. 일찍 귀가한 탓에 기대가 부풀고 부푼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져 나도 남편도 서운해했었다. 너무 설레지도 너무 기대하지도 말자. 매일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는 게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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