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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pr 25. 2024

우울과 불안

나를 용서하는 것

 누가 뭐라 그랬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회식 자리에서 웃고 떠들고 서로 듣기 좋은 말들을 나누는 것이 나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친목을 다지고 더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자리 아닌가? 모두가 즐겁고, 그동안 업무 처리하면서 쌓였던 자잘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털어내는 시간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마음이 힘들까. 힘든 감정의 원인을 찾다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생각. 


 사실은 우울하고 불안함이 많은 나인데, 겉으로 잘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늘 포장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냐고 한다. 참 안정되어 보인다고 한다. 며칠 동안 비슷한 얘기를 들으니 나도 몰랐던 어떤 감정이 솟아올랐다. 짜증이다. 


 내가 그렇게 보이려고 애썼던 건 맞다. 나의 불안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내가 기본적으로 우울한 상태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모른다고? 어쩌면 나는 내 진짜 모습을,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 알아차려주길 바랐던 걸까.


 분명 의도는 칭찬이었고, 몇 년 동안 나를 지켜봐 온 선배들의 따뜻한 말이었는데, 나는 계속해서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이 밉고 싫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참 별로다. 내가 원하는 나는 우울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고, 건강하고 안정된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애써서 포장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게 가식이고 거짓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일을 할 때 진짜 내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기 본래 모습대로 살겠지만, 안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편리한 대로 나를 바꾸고 적당하게 사회생활을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이 괴롭다는 데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해답을 책에서 찾는 편이었다. 문제를 파고들어서 파헤치고 원인을 찾아내 난도질을 하고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또 다른 사람이 얼마나 상처를 입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끝장을 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면 또 미친 듯이 파고들고, 너덜너덜해진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분명한 건 그러고 나야 마음이 조금 안정된다는 거다. 


 괴로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또다시 글을 쓰고 있다. 눈물이 난다. 왜 나는 이 모양이며 이렇게 괴로워야 하며, 삶을 투쟁하듯 살아야 하는가. 인생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데, 다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이토록 엉망진창인 나를 용서하기가 너무 어렵다. 괜히 딸내미한테 화나 내고. 결국은 이 화가 약한 사람한테 간다. 그리고는 내 마음 편하자고 사과는 하고. 오늘은 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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