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맨 끝 가장자리에 앉아 가장들을 바라본다. 돈 많은 가장, 잡혀 사는 가장, 가장이었다가 홀로 사는 이도 있다. 잡혀 사는 가장은 기구하다. 회식 후 집에 도착해 기다리는 아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집에 있는 아내는 남편이 오기 전 저녁을 먹지 않는다. 요리를 할 줄 몰라 마냥 기다린다. 언제쯤 집에 들어오는지 회식하는 곳은 어딘지 물어본다. 전 남편보다 다정하다. 전 남편과의 결혼 생활로 얻은 두 자녀를 데리고 나온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아직 이혼도 하기 전에 그이를 만났다. 이혼 합의금조로 전남편에게 내주었다. 천 만원즈음 되는 돈이었다. 흔한 형태의 만남은 아니지만 이런 독특한 형태의 가장도 있다.
첫째는 둘째를 찍어준다. 아빤 가벼운 둘째를 더 오래 안아준다.
집에 들어가 아이를 안아준다. 늦게 들어온만큼 미안한 마음에 허리가 아파도 목마를 태운다. 즐거워하는 아이의 웃음소리에 주방에서 설거지 하는 아내도 한숨을 쉰다. 또 집에 들어와 손도 씻지 않고 아이부터 안아준다며 큰소리 치던 아내는 없다.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지 보름이 지났다. 말도 안 걸고 필요한 요구는 메모지에 써서 보여준다. 아내는 내가 퇴직금 받은 걸 다른 통장에 숨겼단 이유로 나를 믿지 않는다.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엔 대화도, 밥도 차려주지 않을 기세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결혼 후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 했다. 별 시덥잖은 이유들로 말이다. 화장실 화장지를 채워두지 않아서, 싱크대에 우유팩을 뒤집어 두어서, 퇴근을 언제 하는지, 친구를 누굴 만나는지, 핸드폰 패턴을 왜 바꿨는지 등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 결혼은 미안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꼭 나만 잘못한 사람처럼 나는 이상한 사람이고 피해자는 아내인 경우가 늘었다. 지칠대로 지쳐 이젠 더이상 미안하단 말도 내뱉기 싫어졌다. 어디까지 미안해야 하는 건지 꼬리에 꼬리를 무니 이건 뭐 태어난 걸 미안해해야할 판이었다.
"아저씨, 판 좀 갈아주세요!"
인당 29900원의 무한리필 고깃집 불판은 갈아주지 않는다. 생고기로 기름때를 닦아내고 성질 급한 가장은 휴지로 닦아낸다. 고기 구운 연기가 매장에 그득하다. 가장들은 삼삼오오 담배를 피러 밖에 나간다. 십 년 넘게 담배를 피던 난 따라가기만 한다. 이제는 피지 않는다. 아내가 먼저 피우던 담배를 십년 넘게 피다 끊었다. 우리의 부부생활도 언젠간 끊어질지도 모른다.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면서 함께 담배를 끊었으니 아이를 다 키우고나면 우리의 인연도 끊어질지 모르겠다.
아이는 언제 다 크는 걸까?
고기는 언제 다 익는 것이며 어느 순간부터 타들어가는 것일까?
불타오르는 감정선도 때론 지나치면 타들어가게 되고 또 어떤 이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고 질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