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재밌게 보려거든 결혼을 하자

by 이백지

저건 바다야. 아나바다? 모르면 받아적어


퇴근 후 아이들은 TV를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TV 이모가 육아를 도와주었고 배달 음식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강아지 산책을 시켰다. 첫째 딸이 밥을 다 먹고 아빠를 따라 나온다. 강아지 목줄을 잡아당기지만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 한다. 부모와 아이의 대치와 닮아있다. 아이는 집에 대기 중인 다른 강아지를 산책시키자고 말한다.




식탐이 강한 닥스훈트보다 식욕이 왕성한 우리집 P4P 1위 따님




닥스훈트를 데리고 나오자 딸이 킥보드를 타자고 조른다. 강아지 산책시켜야 해서 킥보드 산책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엔 아들이 강아지 목줄을 잡아끌었지만 순순히 따라가지 않는다. 이내 아빠에게 목줄을 부탁하고 저멀리 달려간다.


닥스훈트도 집 밖에 나오면 미친듯이 달렸었다. 지금은 나이도 있고 많이 차분해졌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구름 위에서 내려올 것이다. 아마도 초등학생즈음이면 말이다. 자녀가 유아기인 시기는 힘들지만 재미있는 시간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성장해 있고 그러다 보면 내가 꾸린 가정에서 탈출할 것이다. 누나들이 결혼으로 하나 둘 집을 떠났을때 집안 전체의 대화나 목소리가 줄어들어 너무나 적막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볼 수 있는 TV 채널들을 마음껏 보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내 방에 홀로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았다. 결혼은 TV를 재밌게 보기 위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딸이 음식을 먹을때 귀가 부스터엔진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귀가 보이면 그때부터 음식이 입 속으로 사라진다.




사촌 형의 결혼 소식을 접했다. 한 달 후 식을 올린다고 한다. 느리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종교단체인지 다단계인지에 빠져 가족과 연락조차 되지 않았던 형은 몇 년을 허비했지만 이사조차 가지 않고 그 집에 남아 막내 아들을 기다렸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헛된 꿈은 뜬구름이 되어 날아갔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결혼식 다닐 일보다 장례식 다닐 일이 더 많아진다. 형의 결혼에 축하의 인사를 해야할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어려서는 죽음이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부고 소식을 듣는다. 결혼이나 부고 소식 모두 일정 페이지의 종말이다. 어떤 사업체는 호황을 맞아 자녀라는 신입사원까지 들어오며 사업을 확장하는 반면 어떤 사업체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동업자와 알콩달콩이라는 표어 아래 살게 될 것이다.


여전히 결혼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봄이 오면 친척 형의 결혼식을 다녀온 뒤 곧바로 어머니가 누워계신 선산에 다녀와야한다. 결혼후 TV를 재밌게 볼 줄 알았는데 아이 보는 게 더 재미있다. 내가 나의 어린 시절과 놀고 있는 그 기분은 아마 당해보면 알 것이다. 축하와 위로는 결혼과 죽음 모두에게 허용 가능한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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