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가난한 선택을 한다.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돈이 급하면 물 불을 가리지 않는다. 만족스럽지 못한 처우와 환경임에도 억지로 업무를 받아들인다. 가난한 사람은 몸과 마음을 돌볼 겨를이 없다. 삶에 쫓기듯 사는 탓에 건강은 뒷전이다. 돈을 벌지만 새는 돈이 많다. 가난과 게으름은 친구같은 사이다. 게으름은 가난에게 탓을 돌리고 가난은 게으름에 기대 하루를 낭비한다.
결혼 후 가난해지는 경우도 있다. 혼자 지낼때는 저축도 하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1년에 한 번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준의 벌이였지만 결혼 후 집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을 책임지려면 가난한 삶에 탑승해야 한다. 자꾸만 돈이 없다고 투덜대며 주말 여행을 꿈꾸는 아내와 매 달 카드값을 막느라 분주한 남편, 오늘도 아이들 먹고 있던 반찬에 밥을 퍼 먹다 말고 아이를 씻긴다. 그나마 교대로 아이를 씻기기로 한 건 반길만한 일이다. 거의 1년간 퇴근 후 아이들 씻기는 건 내 몫이었다.
아내가 취직한다해도 가정 형편이 나아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경력 단절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을만큼 경력이 없다. 어쩌면 그토록 결혼에 목을 매었던 것도 취직보다 편한 가정주부 생활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냉면은 오늘 저녁에도 싱크대에 그대로 쌓여있다. 키우는 강아지는 씻기지 않아 피부병에 걸렸고 치료비만 25만원이 들었다. 분기에 한 번씩 30만 원 가량은 강아지 병원비로 쓴다. 역시나 가난한 선택이었다. 잘 돌보지도 못할 생명을 둘씩 집안에 들여서 개도 고생, 주인도 고생이다.
가난한 선택을 피하기 위해 청년들은 연애조차 망설인다고 한다. 현명한 세대다. 당장 나 하나 살기도 버거운데 누군가와 만나고 밥 먹고 데이트 하는 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문화이다. 이제 연애도 대리만족을 통해 간접경험으로 만족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타인의 감정교류에 호응하고 욕하는 거에 익숙한 시대다.
아들은 엄마에게 아빠는 돈이 많다며 아빠 지갑을 보여주었지만 천 원짜리가 그득한 지갑을 보며 아내는 한 숨을 쉰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며 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뭐든 당연하게 대접받길 바라는 이에겐 지갑의 천 원짜리도 아까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