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면 우리 이혼하자"
아내가 술을 마시며 내뱉은 말이다. 피해의식이 강한 아내는 사소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나무랐다. 나에게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했다며 성인ADHD 검사를 권했다. 이전에는 정신과 치료나 우울증 약물 복용을 권했었는데 최근엔 성인ADHD로 초점이 바뀐듯 하다.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대부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과 지내기 힘들다며 치료를 권했다. 소비의 측면에서 보자면 실패한 결혼이다. 나에게 쓰는 돈과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니는 시간과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1억이 넘는 퇴직금을 받은 회사 선배 역시 마음 속으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돈벌이를 못할 수 있으니 불안해서 돈을 쓰지 못하겠다 한다.
회사 생활을 하는 이들이 부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 전개다. 아내는 로또 1등 당첨이 부자가 되는 유일한 해법이라 말한다. 난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거란 착각을 믿지 않는다. 돈이 많았을 때에도 불안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요즘에는 주 7일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신체의 고통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결혼 후 외벌이로 아이 둘을 양육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내가 조금 덜 쓰고 더 벌어야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 유지된다.
지난 주 사촌 형의 결혼식에서 만난 사촌 동생에겐 결혼을 권하지 않았다. 사촌들 중 유일한 미혼이지만 굳이 시간에 쫓기듯 결혼을 결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아내가 취업을 한다해도 또다른 불안 요소들이 찾아올 것이다. 어찌보면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노동의 고통 속에 나를 매몰시키는 것일수도 있다.
아내의 답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로또가 당첨되어 이혼하거나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 황혼이혼을 하거나 하는 쪽으로 말이다. 술을 거하게 먹으면 속내를 말한다. 자기도 남들처럼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고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정작 나는 타인의 삶에 신경쓸 겨를조차 없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난 아직도 내 가족의 휴대폰 번호와 아내의 휴대폰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버튼만 누르면 통화할 수 있어 휴대폰 번호를 그저 주민등록번호처럼 기억하는 듯하다. 얼마 전 아내의 생일 날짜도 한참 생각해서 확정지었다. 다행히 맞아 떨어졌다. 이 안도감은 아마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에겐 애초에 겪지 않을 고통이다.
현실을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일들과 숫자에 관심이 없다. 아내는 아마도 이상한 남편과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낮에는 선배들이 물었다. 너 도대체 왜 결혼한 거냐고 말이다.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뭐든 돈이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걱정이 대부분이다.
돈이 다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수동보다는 자동이 편한 삶이다.
삶이 늘 그렇듯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들 믿는다.
아이들에게만큼은 물질적 풍요에서 얻는 행복보다 다른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정작 내 자신조차 그 가치에 부합하는 말과 행동에는 거리가 먼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