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힘들다고 한다. 아이들이 보름 넘게 감기를 달고 사니 몸도 마음도 지친듯 하다. 아내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니면서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로 스트레스를 요리한다. 남편은 요새 퇴근 후 자전거로 음식 배달을 하다 20시쯤 귀가한다. 전에는 퇴근 후에 운동을 즐기는 이들이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나도 그 영역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퇴근 길에 차로 음식을 배달하면 운전을 하루 종일 오래해 허리가 아프지만 자전거로 배달하면 다리가 아프다. 허리보다는 다리의 근육 통증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
6층 이웃 주민은 새벽 운동을 즐긴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는 길인데 우리 부부와 비슷한 연배의 6층 부부는 런닝을 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여유다. 지금도 화장한 6층 주민과 화장 안 한 6층 주민이 구분이 안된다. 한 때는 6층에 아내가 둘인줄 알았다. 누군가 인사를 하는데 기억이 안나는 안면인식에 문제가 있는 1층 남편은 완충된 자전거를 자전거 주차장에 두고 출근하는 길에 런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6층 화장한 첫번째 아내를 만났다. 아직까지 화장한 아내와 화장 안 한 두번째 아내를 동시에 만난진 못했다.
아내는 정신을 단련 중이다. 저녁을 먹으며 힘들다고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힘듬의 원인이 나의 태도로 포장된다. 아내의 마음을 위로해줄 법도 한데 무시와 외면이 일상이 되었다. 아내는 남편 외에도 장모님과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지만 남편은 힘들다는 걸 딱히 내색하지 않는다. 전염이 될까봐 그렇다. 걱정과 눈물, 슬픔은 쉽게 전염된다.
고장난 전기밥솥에서 밥을 뜨고 자리에 앉자 아들의 충혈된 눈이 보였다. 눈꼽도 많이 껴있고 부어있다. 내일은 안과에 가서 진료를 보자하니 무섭다고 한다. 아들은 겁이 많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머물다 퇴원해서인지 태생이 쫄보다. 아빠 역시 세상에 대한 겁이 많다. 40대가 되었지만 모아둔 자산보다 빚이 많고, 아이에 대한 기쁨보다 걱정이 많다.
눈병이 전염되는 질환이면 당장 월요일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내는 또 다시 학원 수업에 빠져야 하는 건 아닌지를 걱정한다. 나에게 월요일 연차쓰는 건 어떠냐고 묻는다. 또 다시 무시해 버렸다. 허재처럼 말이다. 속으론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어.' 하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냥 참고 무시해버렸다. 저녁 식사 시간의 주된 반찬은 걱정이다. 화수분에 담긴 걱정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이 정도 분량이면 염전 수준으로 계속 생산되는 듯하다. 삶은 대를 이어 걱정을 생산하는 짠내나는 생활의 연속이다.
보통 실패한 이들은 부정적 의견이 많고 성공한 이들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다. 결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도 이와 유사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장례식보다 결혼식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