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삶이 곧 지옥이었다. 어려서부터 왜 살아내야 하는지 늘 의문부호였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서인지를 신에게 물었지만 신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때가 되었다 해서 결혼을 했고 나처럼 고통스런 생각에 사로잡혀 삶을 살게 될까봐 아이 갖기가 무서웠지만 아내의 생존을 위해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결혼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내 아버지께선 결혼 역시 대학 입학처럼 무조건 해야한다는 강박이 강하셨고 그렇게 사람이 완성된다고 믿으셨다.
나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다. 하기 싫은 일들을 억지로라도 해내는 걸 보니 어른다워졌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자기주도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니기에 행복한 어른은 아니다. 이는 아내가 원하는 부자가 된다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얼마나 인생을 자기가 염두한 굴레에서 선택을 취하는지가 행복 여부를 결정하는듯 하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마도 테니스나 치면서 겨울엔 스키장도 다니고 이리저리 사진도 찍으며 생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지내고 싶다. 운동하며 사진찍고 일기쓰고 조카들 용돈 주며 지내는 삼촌. 아마도 부업으로 배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8년간 직업이 없던 아내가 내년에 취업을 한다고 해도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냥 주말엔 일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랑 지내고 싶다. 아내가 버는 만큼만 내가 좀 더 적게 일하고 싶다. 만약 아내가 자신이 버는 돈을 생활비에 보태지 않는다면 난 여전히 주말에도 일하고 있을 것이다.
점점 업무가 줄고 있다. 경쟁 업체의 등장과 과열된 시장에 처참한 단가 후려치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 식의 인건비 마인드. 도무지 해결될 여지가 없어보이는 사회구조 속에 누가 2세를 계획하고 있을까? 그 결정은 참으로 대단한 도전이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미안한 감정이 든다. 나 하나 행복하겠다고 아이를 세상에 끄집어 내어 "먼저 갈게 잘 놀다 가!" 하고 떠나는 부모의 속마음은 한없이 미안하기만 하다.
아직은 두 발로 잘 달리다가도 잘 넘어진다. 아마도 바지를 거꾸로 입어서 엉덩이에 있어야 할 뒷주머니가 허벅지에 걸리적거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내는 아이가 바지 거꾸로 입은 것도 몰랐냐며 나무랐지만 아이는 팬티도 거꾸로 입고 있었다. 그 게 좋단다. 펑퍼짐한 여유로움과 꽉 끼는 엉덩이, 팬티 고무줄을 늘려 입거나 줄여 수선해 입던 내 어머니의 재봉틀 바늘은 날카로웠다. 늘 아이의 불편함을 향해 날이 서있었고 본인의 불편함은 당연시하셨다. 치킨 가게 안쪽에 마련된 작은 방 한 켠이 내가 기억하는 처음의 우리집이었다. 화장실은 건물 2층에 올라가야 했고 지금은 자동차 한대가 들어가는 주차장으로 바뀐 성수동의 우리집은 공장 노동자 아빠들이 퇴근 길에 치킨 한 마리씩 사들고 귀가하는 그런 가게였다. 건너편 세탁소 집도 세탁소 안에 마련된 작은 방이 생활 공간인 집이었다. 공장 한 켠에 집이 있는 공장 따님은 나와 비슷한 연배였지만 장난감만큼은 비슷하지 않았다.
딸은 자기는 공주이고 동생은 왕자인데 아빠도 왕자냐고 묻는다.
"아빠는 그냥 백성이야."
주방에서 간호 조무사 중간 평가 시험을 준비하는 아내가 답한다.
"개족보"
빨대가 없어야 하늘을 보고 빨간불 신호에 멈춰선 뒤에야 화단의 꽃에 눈길이 간다. 삶이란 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