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게 사랑이라면 난 하지 않으리
곰발바닥 같았다. 아내의 두 번째 유산 선물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첫 유산때는 아내가 치와와를 선택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견종이다. '래쉬'를 보고 자라온 나는 개는 코가 길수록 멋진 동물이었다. 다행히 코끼리는 개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강아지는 닥스훈트였다.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결혼도 그랬고 대부분의 선택이 그랬다. 타인의 부탁을 너무 쉽게 들어주었고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치와와는 질투가 많았다. 두 번째 강아지를 하대했다. 그에비해 닥스훈트는 치와와를 좋아했다. 주인을 무는 치와와는 나쁜 개, 식탐이 많지만 시끄럽게 짖고 똥 오줌 못 가리는 닥스훈트는 조금 미련해보였지만 순둥이였다. 나는 닥스훈트가 좋았다. 얼룩말 뒷다리처럼 근육질인 뒷다리로 뛰는 모습이 돼지가 뛰는 모습과 유사했다.
집은 늘 돼지가 사는 곳처럼 뒤죽박죽이었다. 어제의 식기류는 오늘도 싱크대에 물에 담겨있었고 바닥엔 황야의 모래바람처럼 머리카락이 날리었다. 집안 일의 미니멀라이프 주의자인 아내와 개 두 마리,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는 어린아이 둘의 조합은 집안을 내전국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면식범이 할퀴고 간 자리에 어지럽혀진 책들 장난감, 옷들이 바닥을 채웠고 국과수 수사반처럼 개들은 아이들이 남긴 간식의 흔적을 지웠다.
아내는 강아지에게도 동일한 자세를 유지했다.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두었지만 아이들에게 잘 내어주지 않는 것처럼 술을 마시거나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개 밥을 주지 않았다. 밥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퇴근을 한 나는 개밥을 주었는지 물었고 개밥을 주었다. 정작 아내에겐 저녁을 먹었는지 묻지 않았다. 이미 막걸리를 들이키고 있었기에 당연히 식사를 했겠거니 생각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경멸했다. 무관심한 남편의 애정 순위에 자신이 유산으로 잃어버린 아이 대신 들여온 강아지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남편은 내전을 끝내고 싶었다. 퇴근 후 아이 목욕을 시키고 아이들과 놀아주다 잠드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그는 주말이 더 힘겨웠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 집안 일의 주가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맞벌이가 아님에도 집안 일을 분담해서 하는 게 불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를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아내의 삶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받는 삶에서는 멀어진지 오래다. 아마도 몸무게만큼 사랑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의 거리도 멀어진듯 하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저녁은 커녕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 유튜브, 소설 정도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삶의 비참함도 가늠이 된다. 새벽 2시 4시까지 그렇게 지낸다. 핸드폰 불빛은 켜져있고 얼굴은 그 걸 들여다 보고 있다. 그 삶의 이유나 가치를 묻기가 부끄럽다.
내일은 운전을 조심해야겠다. 구조물에 앞 범퍼가 걸려 바퀴쪽 범퍼가 이탈했다. 맨손으로 비를 맞으며 앞 범퍼를 다시 끼워 맞추려 하는 내 모습에서 며칠 전 아이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났다.
"아빤 커서 뭐가 될 거야?"
"아빠는 이미 크고 어른이라서 되고 싶은 게 없어. 그냥 일을 하지 않고도 편하게 살고 싶어."
부처님 오신날 아이들 어린이집 특별활동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우의를 입고 전기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헬멧과 목 폴라로 코까지 가리고 비를 맞으며 음식 배달을 하는 그들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얼굴을 많이 가리고 일을 할수록 동네 주민일 확률이 높다. 나 역시 동네 배달을 할 때 얼굴을 최대한 많이 가리는 편이다. 비염에 기관지도 좋지 않아 그래서이기도 하겠지만 배달 일을 하다 대학 동기를 보거나 교회 친구를 마주친 적도 있어서 최대한 나를 숨기고 내가 번 돈은 내 아이들을 키우는데 쓰려 한다. 난 가리워지면 잊혀질 존재일지도 모른다.
TV 육아, 끊기 힘든 이모님이다.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를 찾지 않을때 설거지나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등에 매달려 놀아달라 한다. 무릎 아래에선 강아지들이 산책 가자고 아우성이다. 이래서 휴일이 더 힘든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