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안 잔다.

by 이백지

아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어릴적 모습이 기억난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과거를 대부분 잃어버리고 살아왔는데 아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주마등을 경험한다.

아내는 재미와 웃음을 추구하는 모양새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 하루를 보내면 술로 하루를 잊으려 한다. 아내와 나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나 역시 재미를 그리고 웃음을 바라지만 삶의 덧없음을 들여다보는 재주도 있다. 주로 뷰파인더를 통해 주변부를 어둠으로 지워버리고 시선이 머무는 곳에만 집중하는데 아내의 시각은 라이브뷰 방식이다. 폭넓게 이곳 저곳을 보아서인지 냉장고에 뭐가 어디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잘 모른다.

딸 아이도 잘 모르겠다. 아내의 또 다른 패키지 상품인듯한 이 녀석은 어서 빨리 좋은 남자를 만나 아빠의 품을 떠나야 할텐데 아직 다섯 살 아이에게 바라긴 어려운 부탁이다. 아내 역시 좋은 남자가 있으면 서슴없이 내 품을 떠나주었으면 좋겠다. 사람도 사랑도 형태가 다르다. 소유의 형태도 있고 대상을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한 사랑도 있다. 살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로 삶을 바느질하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말이다.


아내의 사랑 형태는 냉장고에 음식을 잔뜩 구비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에게 길게 조금씩 나누어서 음식을 내어준다. 그래서 때로는 유통기한 1년이 지난 음식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주려고 사는 건지 냉장고를 채우려 사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식구들의 배 대신에 냉장고를 채우는 것에서 포만감을 느끼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방식에 맞지 않게 몰래 꺼내 먹는 걸 싫어한다. 일정 기간을 두어야 하는 식품이 순식간에 사라지면 번개처럼 화를 낸다. 이제는 아내의 화내는 모습도 익숙하다. 집에 사무라이가 있어 발도술을 쓰는 것처럼 목을 겨누지만 자주 화를 내는만큼 칼집에 자주 들어가는 칼날이다. 나이 들고 신경이 둔해지면 무뎌지는 칼날을 내 어머니의 아빠를 향해 쏟아내는 발도술을 통해 많이 보아왔다.

지난주엔 누나네 집에 집들이를 하고 왔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에 구조도 특이하고 좋은 집이었다. 냉장고, 세탁기도 새 것으로 채워 넣었고 출퇴근용 자동차도 마련했다.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이 아이폰이랑만 호환된다하여 핸드폰도 바꾸었다. 아빠차, 엄마차가 있고 내집도 마련했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누나의 삶은 풍요로워 보였다.


"집이 왜 이렇게 더러워요?"
아들 딸과 같이 놀자며 문을 두드린 윗층 꼬마의 말에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집을 치우진 않는다. 마치 냉장고를 채우고 아이들에게 과일은 내어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지저분하다는 소리에 짜증을 내지만 집을 치우진 않는다. 아내는 오늘도 부자를 꿈꾸며 복권을 산다. 아내는 언제쯤 풍요로운 삶을 살까? 폐경기 1년이 지나면 풍요로워질까? 외벌이에게 풍요는 무슨 풍요란 말인가? 건강하게 아이들이 자라는 것 외엔 더 바랄 게 없다.



아빠는 아이들을 통해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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