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현관을 지나 반 계단을 내려가면 어떤 집은 B01, B02라는 명칭을 또 어떤 집은 반올림 해서 101, 102호를 사용한다. 반 계단 아래의 집들은 항상 지상을 올려다본다. 집 안의 화장실조차 한 두 칸의 계단을 올라서야만 다다를 수 있는 구조의 반 지하 집들, 아이는 태어난 곳 역시 정할 수 없었다. 엄마는 아이가 왜 우는지 알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신세 한탄과 함께 욕을 쏟아냈지만 화는 풀리지 않았다. 신축 아파트에 입주해 마감이 덜된 부분을 하자보수 하는 집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가뜩이나 수중에 돈은 없는데 화장실 누수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이란 작자의 사정도 참을 수 없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행복한 마음 반, 억울한 마음 절반이 밀려온다. 아이 유모차는 지하로 내려오지 못했다. 현관 앞 공유 킥보드처럼 세워두었다.
남편은 아내를 떠났다. 애초에 누군가를 책임질 용기조차 없던 사람이었다. 그저 서로가 좋아서 만났고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생활고에 시달려 장인어른께 생활비를 구걸하는 신세임에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 흔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조차 없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한 생활비라 믿었던 비용은 남편과 함께 사라졌다. 아내는 나이가 많을수록 책임감도 강할 거라 여겼는데 책임감은 나이와 정비례하지 않았다. 사람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나이가 차도 여전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남편은 떠났지만 딸은 엄마 곁에 남았다. 언젠간 이 년도 다른 남자 품으로 떠나겠지만 엄마로 지낸 삶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남편의 사랑은 못 받고 자랐지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재혼이었다. 이미 열 살 미만의 아들과 딸을 데리고 외할머니와 결혼했다. 결혼 후 쌍둥이도 생겼다. 배다른 남매는 한 식구가 되었다. 아이 넷을 키우는 건 특별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먼 훗날 사위에게 생활비도 줘야하고 손녀까지 보살펴야 하는 운명을 재혼할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어딘가로 흘러가지만 목적지의 끝은 저마다 다르다. 늦은 나이에 낳은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남편 또는 아내의 문제로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 집도 있다. 아이는 축복이면서 큰 짐이기도 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야"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진 친구의 푸념섞인 말이다. 엄마 뱃속의 둘 중 하나가 아픈 상태로 세상에 나왔다. 원래 예정일보다 빨리 세상에 나와서일까? 병치레가 심했다. 의사는 혼자 걸을 수 없을 수도 있다 말했고 최대한 다리 근육이 굳어버리지 않게 수시로 병원을 다녔다.
아이를 갖게 되면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의 위선을 알게 됐다. 아이가 성장하는 환경이 개천 수준이라면 물이 흐르는 크기와 넓이대로 아이가 자란다. 어미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아이를 방치하고, 아비가 매일 술에 찌들어 사는 집에 의사, 판사, 변호사 아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어쩌다 가난한 형편을 극복하는 성공 스토리는 TV 드라마처럼 모두가 꿈꾸는 흔치 않은 로맨스이다. 부모와 자식은 각각 저마다 다른 로맨스를 꿈꾼다.
가끔 그 짐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세탁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는 가정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이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