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
다섯 살때 받은 내 세뱃돈은 어디로 갔을까?
삶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장 초입 신발 가게에 시선이 빼앗긴 첫째가 고무신이 갖고싶다 말한다. 둘째는 이미 카봇신발을 고른 상태다. 아이들 신발은 걸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부분은 없는지 가게 안에서 걸어보라고 시켰더니 이미 구름 위를 걷고 있다. 분명아이들 간식 사주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돈으로 신발을 샀다. 이래서 장사는 목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였구나.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친구에게 선물받은 마이쮸 하나를 신발 가게 주인에게 드린다. 누가 보면 신발을 공짜로 받은줄 알겠다. 허나 나 역시 이모부님께 아이들 간식 사주라며 전달받은 용돈을 신발 가게 주인에게 식비로 전달해주었을 따름이다.
아들이 찍은 사진이다.
기쁨과 걱정의 독립영화 두 편이 동시상영한다.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동갑내기 자녀 넷을 낳았다. 서로 쌍둥이 자녀를 말이다. 그 중 한 아이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아이 아빠는 목에 칼이 들어온 채로 사는 기분이라 말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혼자 생활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는 친구의 말에 관통한 칼날이 보였다. 푸른 빛이 감도는 역날검이었다. 부모의 목을 관통한 칼날은 숨통을 천천히 조이고 있었다. 부모가 가져가는 몫은 출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일종의 래칫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먹고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그 게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는 전달자, 혀 역시 음식을 뱃속에 전달해 준다.
"자, 지난 1년 동안 아이를 위해 고생하신 우리 어머님께 큰 격려와 위로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돌잔치 진행자의 한 마디에 엄마 스태프가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 장면이 영화처럼 느껴졌다. 엄마 역의 배우는 자신의 시기가 저물고 아이를 위한 새 시대가 열렸음을 직감했다. 자신보다 먼저 크랭크인한 배다른 동생의 딸은 엄마와 친구처럼 다닌다. 동생의 딸이 중학생이 될 무렵 엄마와 키가 비슷해졌다. 동생의 남편은 현관문이 열리면 미친듯이 뛰어나가는 강아지처럼 집을 나갔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귀소본능이 강했던 탓인지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자신과는 동갑내기였다.
계절의 변화는 지구의 자전축 탓이던가. 결국 돌고 돈다.
신고왔던 신발을 비닐봉지에 담기도 전에 아이들은 새 신발을 신고 마트로 뛰어간다. 계산대 앞에서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친구와 마주친다. 주인공들은 서로 이번 작품 활동으로 받게 된 간식과 선물을 자랑하기 바쁘다. 화장을 하지 않고 장을 보러 온 아이 엄마는 모자를 깊이 눌러써 눈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샌들 사이로 보이는 발가락이 우리 아파트 6층에 사는 엄마의 발과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부모 자식도 아닌데 발가락이 서로 닮아서 신기해하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집에 가서 뜯자던 사탕봉지를 뜯어 길바닥에 사탕이 굴러다닌다. 열 개 중 다 흘리고 하나만 입에 넣었을 따름인데 맛있다며 좋아한다.
가족이 가족을 낳고 다시 가족을 이룬다.
아이가 행복한 모습을 보이면 덩달아 부모도 행복해진다. 흘린 사탕을 주워 집에가서 물로 한 번 씻어 먹으라 했다. 이건 좀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