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새 신발을 신고 어린이집에 가고싶다고 말했다. 새벽에 비가 내려 신발이 더러워질까봐 날이 풀리면 신어보자 했다. 아들은 새 신발 대신 이전에 신던 신발을 섬섬옥수 주섬주섬 꼬깃꼬깃 신었지만 딸은 대통령처럼 뜻을 굽히지 았았다. 쏜살같이 새 신을 신고 킥보드에 올랐다.
등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강아지들이 밖에 나가고싶다며 꼬리친다. 목줄을 건 강아지 앞으로 신형 전투화를 신은 군인이 빠르게 걸어온다. 발목 위부터 신축성 천으로 덮인 신형 전투화다. 잘 다려진 군복과 넓은 보폭, 그리고 다소 상기된 얼굴에서 가족들의 기쁨이 느껴졌다. 벨을 누르고 현관 안으로 사라진다. 비밀번호를 누른 건지 세대호출이었을지 기다림의 시간이 엇비슷했다.
강아지 산책이 끝나고 헬멧을 쓰고 음식 배달을 시작한다. 남들 밥시간에 일해야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다. 음식점 사장님께서 오븐에서 나오지 않은 피자를 기다리며 물으셨다.
"오늘 일 좀 있어요?"
"주문 거의 안들어 와요"
"한가해도 너무 한가하네요."
종이 상자에 피자를 담고 비닐 포장을 하는 사이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음식점들은 아직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나봐요."
사장님께서는 소리내어 웃지 않으셨다. 호탕하게 웃었다가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붙잡혀 갈 것 같은 불안한 미소였다. 가게 문을 경계로 바깥 바람이 차가웠다. 길 위에 서있는 오토바이, 그 위에 앉아 콜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라이더들은 내부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바깥 상황이 어떤지 설명할 책무가 있다. 마치 기자들처럼 말이다. 사무실에만 앉아있는 이들은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가볍게 질문을 던지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글을 써야 한다. 신속정확이 생명인 라이더와 임무가 유사하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난해한 현재를 살고 있다. 국회 담을 넘는 의원들과 유리를 깨고 진입하려는 군인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결과가 나왔다. 몇 달째 임대문의 종이가 붙어있는 가게는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리에 텅 빈 곳이 늘고있다.
점심은 어제처럼 라면이다. 일거리가 없는 거리를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계란을 풀고 밥을 말았다. 오는 길에 아이들 간식과 과일, 반찬을 사왔지만 점심때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다. 통장에 남아있는 돈이 사라지면 육아휴직도 끝나겠지. 흡사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는 존시처럼 몇 개의 음식점이 문을 닫아야 겨울이 끝날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내 생에 다시는 찬란한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봄은 각자도생처럼 일부에게 허락된 햇빛이다. 그늘진 역사에 봄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