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식탁에 앉아 휴대폰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거실에서 놀던 아이가 무릎 위에 앉았다. 무얼 보고 있냐며 물었고, 밖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큰일났어. 지금 대통령이 누군가를 싹 다 잡아가려 하고 있어. 너 대통령이 뭔지 알아? 인물을 뜻하는 건지 단어 자체를 말하는 건지 알까? 인간의 위대함이 출동한다. 모르는 것을 알고있다고 착각한다. 지금의 대통령 또한 그랬을까. 아들은 회오리라고 말했다. 그래, 지금의 정세가 꼭 그 말과 부합하지. 왕이야. 대통령은 왕이랑 비슷해. 왕이 시민들을 붙잡아 가둔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야.
같은 시각 안방 침대 옆에 숨어 있는 딸은 음성입력 버튼을 누르고 "재밌는 거"라고 유튜브에 명령을 내렸다. 평화로운 추운 겨울이다. 밖은 바람이 불고 있다. 올 겨울부터 찬바람을 쐬면 소화가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하다. 허기짐의 간격이 빨라졌다. 여전히 불안 증세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난 이러한 내 몸의 반응을 예민함에 기인한 결과값으로 인식하고 있다. 처참하게도 곁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남편의 예민함을 직시하진 못한다. 무딘 사람은 아닐진대도 결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고통에는 공감의 수용폭이 넓지만 송곳처럼 찌르는 언어의 폭력에는 둔감하다. 애써 무시하거나 회피한다. 작은 고통들로 삶이 괴로워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상대란 존재 자체도 부정해 버린다.
부정하며 살았다. 그렇게 10년을 채워가고 있다. 친구가 내년이면 결혼 10주년이라 말했다. 그 친구가 결혼하고 2주뒤 나도 결혼을 했다. 도망치듯 말이다. 내가 살던 집에서 막내에서 그리고 독신에서 빠져나왔다. 탈옥을 도운 아버지께서는 살 집을 마련해 주셨다. 아내 역시 그런 처지였다. 막내로 어머니로부터 빠져나오길 바랐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하필이면 그 게 나였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다. 이 또한 부정이다. 소화를 돕지 않는 겨울 바람을 뚫고 아들과 함께 장난감을 사왔다. 권총이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선택이다. 스폰지 총알이 들어있다. 총구를 겨누는 솜씨가 제법이다. 딸은 집에서 TV나 보고 있겠다고 말했다.
"먹고싶은 거 사다줄게 말해봐"
"컵케이크, 딸기 컵케이크랑 초코 컵케이크"
아들의 손을 잡고 머핀을 사다주었다. 흘러내리는 머리에 핀을 꽂아준다. 아직 묶을 정도의 길이도 능력도 안된다. 대통령 역시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