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아내는 고기를 구웠다. 소금도 넣고 후추도 넣는다. 내가 구울 땐 고기 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는다. 오늘은 혼인 신고를 한지 아홉번째 날이다. 식 후 4개월을 미루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그때의 나는 주민센터를 도축장으로 여겼다. '래칫, 다신 돌이킬 수 없어.' 어쩌면 아이를 갖자는 계획보다 더 큰 결단이 요구됐다. 혼인신고를 할 무렵 가난이 시작됐다. 삶의 계획에 아내도 자식도 없었다. 즐거운 순간보다 걱정이 많았다. 아내는 나와 달리 재미와 즐거움, 기쁨을 갈망하는 욕심쟁이였다.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잔잔한 상태가 좋았다. 반면 수면 아래의 생각은 누구보다 거칠었다. 쉽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타인과의 마찰, 거절이 두려웠다. 새학기 첫 수업 냉장고 안 참기름을 꺼내라는 아내의 요구처럼 미래와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게 아내가 결혼 이야길 꺼내지 않았다면 혼인신고 또한 없던 과거이자 미래였을 듯하다.
딸은 엄마를 닮아 감정 기복이 심했다. 태어날 때도 웃으며 인사했다. 아빠인 나에게 반갑게 울어주었다. 모든 걸 이해한다는 미소가 몹시 신기했다. 만난적 없던 아이가 "우리 또 만났네요." 라고 외치며 반가워하는 모습의 미소였다.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 아빠란 존재를 미리 알지 않았을까. 아내를 깊숙이 내방했던 순간을 기억한다면 이 놈이 그 놈이었단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이는 아버지를 닮아 나보다 어른스러웠다. 나는 내 부모가 나를 혼내면 마음의 벽을 두껍게 쌓아 올렸는데 아이들은 성을 세우지 않았다. 벽을 치고 거리를 두려는 부모를 향해 사랑한다는 무장해제 포탄을 발사했다. 이해하기 힘든 사랑의 힘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의 질감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서도 유년기 때의 관계가 유지됐으면 좋겠다. 간지럽히며 잠을 깨워도 웃을 수 있는 그런 사이 말이다.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롭던 어느 날, 아이가 간지럽히며 아빠의 단잠을 깨우는 것에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놀란 아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쓴 삐뚤빼뚤 카드 글씨에 아빠가 잘 때 제일 멋지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어른인 내가 아이보다 좁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구나. 다시 태어나면 내가 네 아들이 되어야겠다. 이 번엔 내가 한 수 알려주지.'
아이가 태어나자 가난한 마음의 대지가 넓어졌다. 비로소 비옥한 땅이 되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에 눈물의 비가 내렸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그의 자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하는 순리에 숙연해졌다. 그 애처로운 순례자의 발걸음 앞에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나의 행복이 다른 이에게 혹여나 부러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양육은 고행이다. 허나 그 안에 깨달음과 미소를 첨가해야 맛있게 익는다. 다 타고 재가 되지 않게 뒤집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