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by 이백지

"아빠, 바다에 가고싶어요."

"겨울 바다는 추우니까 150일 뒤에 가자."

"흙 파서 조개도 캐고 그러고 싶어요."

"그래, 여름에 할머니 댁 바다에 같이 가자."

강아지 두 마리를 씻기고 샤워를 하던 중 아이가 문을 열고 말했다. 아이는 바다를 모래가 많은 놀이터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아이에겐 키즈카페도 놀이터다. 모든 게 재미와 놀이로 통한다. 옆 동에 사는 어린이집 친구와 놀고싶다 말한 딸에겐 구체적인 해명을 못했다. 지난 달 아이 엄마에게 메세지를 보냈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 어렵다는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다.

내 어릴적 어머니와 아버지는 성수동 공장 부근에서 치킨집을 하셨다. 점포 안에는 다섯 식구가 머무는 방이 있었고 홀이 없는, 지금으로 치면 테이크아웃 치킨집이었다. 나는 늘 나가서 놀다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고 이웃집 현관 앞에 똥을 싸고 집에 돌아왔다. 내 기억엔 없는 나인데 동네 주민들이 내가 크고 나서 나를 범인처럼 예뻐해주셨다. 물론 기억나지 않는 범죄자는 부끄러워 뭐라 항변을 못했다. 관리가 안되던 아들은 한진 앞바다가 있는 기지시와 석포리 시골에서 잠깐동안 살게 되었다. 그곳에도 바다가 있었다.

컬러 사진 속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물에 뿌리를 내린 바위 위에 올라가 놀고있는 가족을 보고 있었다. 차가운 물이 싫었다. 겨울 수련회의 세족식처럼 벌칙같은 느낌이었다. 죄를 씻어주는 이도 벌칙, 발톱 사이에 낀 양말 털과 발가락에 사춘기 소년 수염처럼 자란 털을 보여주는 것 또한 벌칙이다. 서울 사람은 육지인이었다. 데이트 때 "바다 보러 갈래?"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이 인천 소래포구 앞에 사는 이와 달랐다.

오늘도 바다에 나간다. 코로나 시기 때부터 시작한 배달 부업을 바다처럼 여기고 있다. 어제 바다엔 고기가 많이 없었다. 어선이 많은 것도 아니고 주말 저녁 시간임에도 챔질이 오지 않았다. 점심을 부실하게 챙겨 먹었다. 아이들 끓여주고 남길 것 같은 양만큼 미리 덜어먹고 나온 탓이다. 아홉 마리를 잡으면 보상으로 27000원을 더 주겠다는 미션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마도로스처럼 생선회와 초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주문한 챔질이 나에게 배정되지 않음에 감사했다. 평소였으면 내 것도 시켰을텐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와사비를 뺀 먹다 남긴 초밥을 주었다. 아빠 몫을 챙기는 건 아들뿐이다. 아내도 미안했는지 자기 몫의 일부를 건네주었다. 맥주와 소주가 섞인 잔이 보인다. 술 기운에 나에게 한 마디 한다.

"당신 앞으로 갱년기 이야기 꺼내지 마!"

걱정이 앞서 미리 갱년기 대비했으면 좋겠다는 지난 대화에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직장 생활로 힘들었는데 왜 위로해주지 않았냐며 다그친다. 제1의 아해 잔소리와 제2의 아해 잔소리를 들으며 먹는 바다 음식은 맛이 없다. 회전하지 않는 접시를 싱크대볼에 넣어두고 발열조끼의 온도를 높였다. 다시 바다에 나간다. 밤 8시가 지나자 최저단가 3000원에 두 개씩 묶어주는 음식은 2200원 대에 제공된다. 영하의 날씨의 바깥이 아내가 머무는 집보다 따뜻하다. 밤 11시 30분, 아이들 옷을 옷장에 넣어주고 저녁에 넣은 접시는 내일 아침 씻겨주기로 마음먹었다. 겨울 세족식처럼 쌓여있는 그릇들 곁에 아내가 해치운 배달음식 플라스틱이 들어있다. 거실 바닥에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치우고 이불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집 역시 바다다.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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