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

by 이백지

할아버진 더 하셨다. 명절에도 일하시느라 겸상한 적이 없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할아버지는 소식을 하신다고 하셨다. 술을 좋아하시는 할머니와 반대로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으시는 듯했다. 아내와 나랑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 가장 먼저 식사하시고 나가서 일을 하신 듯하다. 몇 천평 규모의 논은 쉴 틈이 없다. 명절이라고 쉬거나 하지 않는 게 농촌의 일상이다.


어제 하루를 피드백해보면 토요일보다 1시간 더 일을 했고 점심 25분, 화장실 가는 시간 15~20분, 빵 먹는 5분을 제외하면 12시간은 일하거나 이동한 셈이다. 점심값 8천 원, 빵값 1300원, 기름값으론 한 2만 원어치는 돌아다닌 듯하다. 일 수입 20만 9천 원. 일요일이라 거리에 차가 많지 않았고 교통체증이 덜해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줄였다. 길에서 돈 버는 배달 일이라 낭비라 표현하긴 뭐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은 3월 1일 공휴일에도 일해야 한다. 아내가 그날에도 일하는 거냐고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자신도 외벌이로 자식들 키우셨다고 너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내 아들에게 나처럼 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위치적으로 설명하자면 외벌이의 삶은 성남시 수정구처럼 한없이 오르거나 숨이 차는 삶이다. 맞벌이의 삶은 그나마 영장산 터널을 지나 성남에서 위례로 향하는 삶이라 볼 수 있다. 터널의 전과 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


언덕을 오르다 동전을 떨구면 어디까지 굴러갈까? 줍지 말고 포기할지도 모른다.


언덕을 오르는 게 일상인 사람들은 주차 실력도 남다르다. 일렬 주차가 아닌 이 열 주차된 차량을 처음 본 곳도 성남이었다. 당시 여자 친구의 사촌 언니가 성남에 살고 있었고 경상도 청도가 고향인 여자 친구는 방학에 집에 내려가기 싫어 사촌 언니 집에 머물며 나와 만났다. 그 집에서 듣던 음악이 롤러코스터 조원선의 음악이다. 오르막길을 오르며 롤러코스터가 출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점을 향해 누워서 운전하는 기분은 나를 2003년으로 데려다주었다. 장소는 그렇게 사람들의 추억을 먹으며 자란다.


위례 신도시가 고향인 아이들이 태어나고 무슨 아파트 몇 단지가 자신이 처음 접한 세상의 집, 가정으로 기억될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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