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소환할 수 있다. 깜찍한 발상이다. 목청이 크면 잃어버린 엄마를 찾을 수 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경비 아저씨가 다가간다. 아이가 엄마를 찾는 동안 나는 음식점을 찾고 있다.
요일 메뉴를 시켰다. 마치 이 식당은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 왔다는 듯 음식이 바로 나왔다. 오후 2시 40분쯤 식사하러 온 나 같은 손님을 위한 좋은 선택지였다. 방금 만든 1인분 음식은 아니지만 어차피 어제 점심으로 먹은 볶음밥을 시킬 예정이었다. 천 원 싸게 볶음밥을 먹었다.
코로나 확진 이후 삶이 20대 시절로 돌아갔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40대에게 20대처럼 일하라 했더니 몸이 좋아진다. 입시 체육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군대 시절 정도는 될법하다. 유격훈련 외줄 타기 시범조교였던 나는 제대를 앞두고 자발적으로 외줄을 처음으로 끝까지 타보았다. 시범과는 달랐다. 줄이 팽팽한 첫 시작 부근과 달리 줄이 늘어진 중간 지점과 오르막 구간에 이르자 속도가 처음 같지 않았다.
간부도 윽박질러 외줄을 태운 나였다. 국방부는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듯 젊은 남자를 색출했다. 당직 근무 때도 편의점 야간 알바처럼 새벽 동이 트길 기다렸다. 제대 하루 전에도 행군을 하였고 행군 복귀하는 길에 다른 부대 동기들이 간부와 함께 부대 밖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서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간부와의 저녁 식사는 없었다. 상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디서 진돗개라도 짖는 모양이다. 흰색 카니발에서 두 명의 젊지 않은 여자가 색출된다. 노래방은 오래전부터 도우미를 찾고 있었다.
A형 텐트 안에서 핫팩에 의지해 추위와 함께 잠들던 혹한기 훈련의 새벽 기온은 영하 16도였다. 민간인 신분의 겨울은 노숙인이 내 집 마련을 한 것처럼 인생 역전의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조국을 위해 군에 자원입대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처럼 우리네들 역시 전쟁이 발발하면 다시 엘리베이터처럼 징집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음식을 다 먹은 후 그릇에 물을 오리처럼 채워야 한다. 메모! 직접 아침을 챙겨먹고 그릇에 물을 충분히 채우지 않아 진돗개가 짖는다. 상황 발생!
집에서 무시받던 아저씨들은 군복만 입으면 다들 마음은 참전용사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멀리 와버린 인생 항로에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그 안엔 나도 있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별별 인간군상도 있다. 학력도 재산도 여자 친구도 무시되는 하향 평준화의 삶에 제대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운 수많은 별들이 우크라이나에도 떠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