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냉장고 문을 열어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집었다. 뭐든 가득 채워야 마음이 편한 아내는 우유를 박스로 구입해 두었고, 입이 짧은 나를 만나 멸균우유의 유통기한을 넘기게 되었다. 냉장고 문을 닫으려던 찰라 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어제 아내가 마시지 않았던 술이다. 작년 말일부터 올해 초까지 쉬지 않고 마신 술을 보고있자니 오병이어의 기적이 떠올랐다. 어제 마시지 않은 술은 아내가 내일의 취기를 위해 아껴둔 기적인지 알 길이 없다.
아이들을 사립유치원에 보내려면 지금보다 두 배의 원비를 더 내야 한다. 아내는 자신이 취직을 해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해 보겠다며 간호 조무사 1년 교육과정을 이수하겠다고 한다. 아내의 교육비는 아내의 어머니께서 지원해 주신다고 한다. 아내는 아직 유치원생이다. 아직 교육비가 많이 들고 막걸리와 맥주, 소주값도 많이 든다. 술값은 내가 지원해 준다고 한 적 없는데 매일이 축제이거나 기분이 우울해 마실 수밖에 없다며 정수기 물처럼 시원하게 들이킨다.
"나도 이 다음에 커서 엄마처럼 침대에 누워 있을 거야!"
딸 역시 아내가 롤모델이기에 이 다음에 커서 나 대신 엄마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겠지? 가족들과 연말모임에서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그 때 술을 입에 대볼까 한다고 말했다가 그럼 영원히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소릴 들었다. 자식은 커서도 자식이란다. 아내만 보아도 아직 다 키운 느낌은 안난다. 결혼을 해서 따로 살아도 장모님께서는 아직까지 간병인 일을 하시며 경제활동을 하고 계신데 딸인 아내는 음주활동을 지속 가능한 성장형 과제로 묵묵히 수행 중인 걸 보면 다 큰 자식도 아직 미성숙한 키워야될 대상인 듯하다.
퇴근 후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사는 집의 평수와 전세 가격을 듣는 게 나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었다. "남들은" 으로 시작하는 아내의 연설은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처럼 넓은 운동장에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자꾸 집중력을 잃게 되어 식사를 마치고 재빨리 교실(거실)로 들어가 아이들과 TV를 봤다. 아내는 다시 유튜브 게임 방송을 보며 혼술을 즐기며 말했다. "아이들 샤워 좀 시켜줘."
아이들 세례식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선잠이 들었을때 다시 아내가 말한다. "아이들 양치 좀 시켜줘." 검은 눈동자가 뇌를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이 들자 아들은 아빠와 양치하러 가자고 조르고 있다. 딸은 화장실까지 어부바로 옮겨달라 말한다. 나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아내 역시 다른 남자친구와 사귈때 남자친구가 화장실까지 안아주어 다녔다는 개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남자 노예 활용법 DNA가 역겨운 아빠는 딸에게 걷지 말고 뛰어가라 종용한다. 양치가 끝나면 더이상 주문을 받지 않는다. 아내여, 네 잔이 넘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