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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원의 교환일기 제 10편 _원에게

by 겨울

안녕, 원.


우선 진심으로 축하해


지난여름 네가 말했잖아. “결혼하면 흐드러진 버드나무 아래에서 하고 싶다”던 그 말.

그 얘길 들을 때, ‘아 이 친구 결혼은 분명 싱그럽고 초록빛일 거다’ 싶었거든.

근데 진짜로 너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니.

내가 다 행복해 -


내가 이번 답장에서 깜짝 놀랄 소식이 있다고 했지?


짠– 나도 결혼해. 우리 어쩜 이래, 결혼도 시차 몇 개월 차이로 맞추는 거야?

어제 식장 예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 이제 드디어 인생 시즌2 방영 시작인가?” 싶더라.


지난 편지에서 네가 내게 뭔가를 하면서 포기한 게 있냐고 물었지.

나는 아빠의 인정 대신 내 인생을 선택하기로 했어.

포기라기보다, 인생이 원래 내 시나리오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걸 그냥 인정하기로 한 거지.

덕분에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무겁고 벅찬 일인지도 매일 실감하고 있어.

그래도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나답게 사는 순간이야.


사실 나는 인정욕구가 좀 큰 인간이야.
상담하면서 그 욕구의 뿌리를 캐보는데, 결국은 ‘가족’으로 가 닿더라.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여전히 꼬맹이 영이 모드였던 거지.


어른 영이는 분명 스스로 서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 가족은 자꾸만 그걸 못 놓아.

아이 취급을 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걸 두고 후회할 거라며 핀잔을 줘.

그러다 보니, 나는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가족에게 받고 싶던 ‘인정’을 찾으려 헤매고.

인정받지 못한 꼬맹이 영이가, 어른 영이 안에서 아직도 발버둥치고 있는 거지.


그래서 내게 결혼은 진짜 독립의 시작 같아.
아빠는 내가 이 결혼을 하면 날 다신 안 보겠다고 했어.

그 말이 얼마나 날카롭게 꽂히던지…

근데 상담쌤이 그러더라. 아빠가 인정하지 않는 건 아빠의 선택이라고.

내가 그걸 받아내느라 아플 필요는 없다고. 그 말에 중심을 다시 잡았어.


결국 가족은 내 가장 큰 약점이자 결핍이야.

근데 그걸 메우는 건 내 몫이더라. 나는 이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어.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내 목소리를 부모가 아니라 내가 낼 거야.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짜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은 배우자뿐이잖아.

부모도 자식도 선택할 수 없지만, 남편만은 내가 고를 수 있으니까.

나는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사람을 고르기로 했어. 그게 내 남자친구야.

(네, 제 취향은 아주 확고합니다)


아,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위대한 쇼맨>에 이런 대사가 있어.
인생에서 중요한 건 돈도 명예도 아니고, “우정, 사랑, 좋아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지금 우정도 있고 사랑도 있고, 좋아하는 일까지 붙들고 있으니

이쯤 되면.. 인생 그랜드슬램 달성이지 뭐 !


또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아무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일도 아니게 돼."

유퀴즈에서 유재석이 길거리에서 한 프랑스인에게 "요즘 고민이 뭐예요?"라고 물었어.

그랬더니 대답이 "life is beautiful."라고 웃으면서 말하는거야.

유재석의 "오! 왜요?"라는 질문에

"beacuase, I am good, my friends are good, my family is good, and I am working, studying.. yeah! Everything is fine."

그 순간, 아—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가 저거구나 싶더라.

내 몫만큼 즐겁고 건강하게. 이미 우리 곁엔 우정, 사랑, 좋아하는 일이 있으니, 내 삶은 충분히 충만하다고.


다시 한 번, 우리 둘의 결혼을 축하해.
이건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진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선택이니까.


p.s 그나저나 곧 만나서 결혼 수다 떨면 재밌겠다.

다음 답장 기다릴게 총총.


- 그윽한 가을밤, 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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