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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25. 2023

폭신폭신한 눈길을 마음껏 걸어서

평창 선자령

선자령은 처음 가는 곳인데 상고대 눈꽃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고대 눈꽃은 날씨가 추워야 볼 수 있는 꽃이다.


선자령 코스는 두 개인데 나는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은 안 오르고 선자령만 탈 생각이다.


길은 평지길 같 완만한데 바람이 조금 심할 수도 있단다. 온도는 아침에도 낮에도 영하 7-8도에서 3-4도 정도란다. 추운 거는 싫은데 오늘은 자칫하면 추운 산을 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사놓고 검단산 갈 때 처음 입었다가 너무 더워서 벗었던 발열조끼를 입고 간다. 모자도 털모자에 장갑도 아주 도톰한 스키장갑을 샀는데 가져간다. 내복은 얇은 거와 두꺼운 거 두 벌을 입었다. 만반의 준비를 한 셈이다. 겉옷은 조금 얇게 입었다. 추우면 견디면 된다.


선자령은 길이 진짜 걷기 좋은 평탄한 길이다. 느릿느릿 혼자서 걷는다. 만나는 사람에게 사진 부탁도 하고 아주 여유를 부린다. 시간은 넉넉하니까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산행이 좋다.


선자령에는 며칠 전에 눈이 많이 내려서 완전 눈산행이다. 날이 포근해서 상고대는 다 녹았고 길에는 눈이 꽤나 많이 쌓여 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기분이 참 좋다. 나무에도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다. 사람들이 걷는 길 말고 앃여있는 쪽을 보니까 발이 푹 들어간다. 무릎 높이다. 이런 걸 보면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올 겨울 들어 이렇게 푹푹 빠지는 눈속을, 폭신폭신한 눈길을 마음껏 걸어볼 수 있어서 행복이라 여긴다. 눈을 보면서, 눈길을 걸으면서, 한겨울에  춥지 않은 것도 참 다행이다.


선자령 바람의 언덕 커다란 바람개비(풍력발전기) 돌아가는 게 멋스럽다. 휙휙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선자령은 평소 바람이 많이 분다는데 오늘은 그다지 바람이 심하지는 않다. 장갑을 안 끼어도 손도 안 시리고 따뜻해서 복된 산행이다.


하늘도 맑아서 파랗다. 하얀 바람개비(풍력발전기)와 파란 하늘과 하얀 눈의 조화가 이국적인 풍경이다.


풍경은 올라갈수록 멋지다. 선자령 정상이 보이는 지점까지 오르니 바람이 불면서 춥다. 겉옷을 꺼내서 입고 발열조끼의 버튼도 약으로 켠다.


정상 100m 남겨두고 점심을 먹는다. 간단하게 싸갔기에 금방 먹는다. 보온통에 따뜻한 물을 가져와서 함께 먹으니 속이 따뜻해진다. 의자를 사서 가져왔더니 땅이 젖었어도 앉기가 좋다.


선자령에서 백두대간 인증을 하고 순환길로 하산을 한다. 초반에는 조금 가파른 길인데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폭신폭신하다. 바람개비도 넘나 멋지다. 오를 때보다도 하산길 조망이 더 좋다.


가파른 길 내려오니 임도길이다. 핸드폰이 배터리 아웃이라고 삐삐거린다. 보조 충전지를 꺼내서 얼른 충전을 한다.


조금 걸어가니 곧 하늘목장이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눈이 더 많이 쌓여있다. 눈길이 참 예쁘다. 걸어도 걸어도 좋을 길이다.


하산길 혼자 걷다 보니까 조용하니 좋다. 조릿대가 우거진 곳은 초록이 올라와 하얀 눈이 더 포근해 보인다. 나무 위에도 눈이 쌓여서 아치문을 이룬 곳도  있다.


하산길은 환상의 공간이다. 계곡이 나오면서 얼음짱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나무들이 눈을 덮어쓴 모습이 별천지다.


양떼목장을 지나니 정말 멋진 공간이 나타난다. 응달이라 그런지 아직 눈세상이다. 나무 위에 쌓인 눈이 꼭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 여기가 북극 산타마을인가 싶다.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가 끄는 썰매만 있다면 어울릴 듯하다. 싱그러운 마음이다.


어떤 젊은 커플 한 쌍이 겨울왕국 속에서 사진을 찍으며 풍경을 즐기고 있다. 나는 혼자서 천천히 걸었기 때문에 그 커플이 아니었으면 개인 사진은 못 찍있을 것 같다. 다행히 기분 좋게 이렇게도 저렇게도 찍어준다.


한껏 여유를 부렸어도 하산해서 시간을 보니 1시간 정도는 일찍 내려왔다. 신산※에서 함께 온 다른 이들은 아마도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당으로 간 듯하다. 나는 삶은 계란에다 초콜릿, 찰떡도 남아 있어서 그것을 먹고 가기로 한다.


남은 간식을 먹고 화장실에 갔더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양치도 씻지도 못하게 한다.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땀을 별로 안 흘렸으니까 찮다.


평창 선자령 산행 기록은 총 12km, 5시간 소요(휴식, 점심 시간 포함)되었다. 대관령휴게소~새봉~선자령~하늘목장~양떼목장~대관령 휴게소 순환길 코스이다.


참,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코스를 탄 젊은이들 몇 명(그쪽 리딩 대장님 포함)이 탑승시간까지 못 내려와서 30여 분을 기다린다. 그런데도 또 30여 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할 수 없이 귀경차는 출발할 수밖에 없다. 백두대간 중에서도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쪽은 눈이 많이 오면 힘든 코스란다. 능경봉까지만 오르고 내려오지 하는 마음다. 나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다음에 또 오면 되는데 말이다. 대중교통으로 서울까지 오려면 고생 좀 하겠다.


신산 : 신사산악회

평창 선자령 눈산행
평창 선자령 산행 기록 : 총 12km, 5시간 소요(휴식, 점심 시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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