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은 상고대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한다. 좋은산 후리지아 여자 리딩 대장님이 회원님들이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얘기한다. 상고대 꽃은 그야말로 눈이 온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온이 내려가서 나무 위에 이슬이 맺힌 게 얼어서 피는 꽃이라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새벽에 꿈속에서도 산행하는 꿈을 꾸었는데, 멋진 상고대 풍광 속에서 순백의 여인이 되어보고 싶다. 첫사랑처럼 시린 마음으로. 나는 C 코스로 가려고 한다. 좀 많이 쉬운 코스다. 곤돌라 타고 올라갔다가 향적봉 정상 찍고 중봉 갔다가 다시 향적봉 들렀다 또 곤돌라 타고 내려올 예정이다. 옆 짝꿍이 100대 명산 다 찍고 어게인 하고 있다는데, 좀 쉽게 여유 있게 오르고 있단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경우가 되겠다. 곤돌라 타고 올라가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상고대 눈꽃이 너무 멋지다! 뽀드득뽀드득 눈 쌓인 길을 걸어 상고대 눈꽃이 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노라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싶다. 올 들어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다! 물론 보기 어려운 상고대 꽃도 하염없이 보고 또 본다. 파아란 하늘에 순백의 눈꽃, 이럴 때는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가 되어 가슴이 마구 부풀어 오른다. 향적봉 정상에서 이모저모로 조망을 하고, 길게 줄을 서서 인증숏 찍는다. 정상 인증 찍는 곳이 두 군데인데 돌비에 쓰여 있는 정상석만 줄이 길고, 하얀 네모판에 글씨로 쓰여 있는 정상에서는 사진 찍는 이가 별로 없다. 그래도 줄 서기 싫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진 찍는 이도 있다. 나도 이쪽저쪽에서 여러 컷으로 인증숏을 남긴다. 향적봉 뒤로 바위에도 올라가 눈꽃 조망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원 없이 하얀 눈 세상을 가슴에도 깊이깊이 새겨 넣는다. 향적봉 정상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중봉을 향해 간다. 지나는 길에 향적봉 대피소가 있다. 저기서 하루 묵고 덕유산 종주 산행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함께 오른 이들은 그냥 향적봉에서 놀다 내려간단다. 그래서 나 혼자 중봉을 향해 간다. 중봉 가는 길 상고대 눈꽃도 정말 멋지다. 걷는 길도. 오늘 날씨가 완전 봄날처럼 포근해서 길에는 눈이 녹고 있지만 말이다, 주목 군락지, 야생화 군락지를 지나간다. 주목들도 상고대 눈꽃을 한껏 피워놓고 산꾼들에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30여 분쯤 걸어가니 어느새 중봉 도착했다.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굽이굽이 산 능선이며 길이며 상고대 꽃을 피운 나무들이며 다 멋진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배터리가 아웃되었다. 여벌 충전지를 가져왔는데 차에 두고 와서 아쉽게도 중봉 표정을 못 담는다. 초반에 산 오르면서 상고대 눈꽃에 취해서 동영상 두 번 찍었더니만 그게 배터리를 많이 써먹은 듯하다. 핸드폰을 배낭 작은 주머니에 집어넣고 걸음을 빨리해서 곤돌라 탑승장에 오니 줄이 길고도 길다. 한 20여 분 줄 서고, 곤돌라 타고 내려오는 시간도 20여 분,그래도 하산하니 오후 3시 30분이다. 오후 4시 집결시간보다는 일찍 내려와 여유가 있다. 곤돌라 탈 때 함께 내려온 이들이 '100대 명산 중 덕유산이 최고'라고 그런다. 나는 아직 100대 명산 인증숏은 이제 8번 째라서, 산에 대해서 무어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두 분 중 한 분이 100대 명산 다 찍고 어게인 중이라면서 '덕유산 최고'를 외치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눈 타령을 얼마나 했는지 이런 멋진 설산을 다 올라본다. 사람은 일단은 꿈을 꾸고 봐야 한다. 눈꽃, 눈 산행, 꿈까지 꿔가며 소원을 하니 오늘 같은 날이 있는 것이다.
제9좌 서해의 등대 : 보령 오서산 (2020. 1. 4. 토)
서해의 등대로 알려진 오서산 산행, 날이 추우면 눈꽃산행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눈은 하나도 없고 미세 먼지에 운무가 끼여서 바다를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냥 겨울산, 겨울나무들이 벌거벗은 채로 하늘 아래 서 있는 모습,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서 흙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성연 주차장에서 임도를 걷다가 산길로 접어들어서 시루봉까지는 계속 오름길이다. 오름길 힘들어 오늘도 자주 나 홀로 산행이 된다. 시루봉에서 오서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능선길인데 정상 부근에 억새가 우거져 가을 산행지로 인기가 있단다. 오서산은 가을에 와야 더 멋스럽겠다. 오서산 정상이 다 와가는데 솔개 4마리가 억새능선에서 빙빙 맴돌며 우릴 반긴다. 함께 산행한 이들이 '2020년 새해 첫 산행에 상서로운 길조'라고 좋아한다.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보니 겨우 두 마리만 찍힌다. 오서산 정상에 오르니 운무가 자욱하다. 날이 맑아 서해바다를 볼 수 있어야 좋은데, 운무에 가려 아쉽다. 조금 추워서 두꺼운 잠바로 갈아입는다. 오서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정상에서 이어지는 억새능선은 겨울이라도 멋지다. 운무에 가린 서해바다도 조금씩 운무가 걷히자 보일 듯 말 듯한데 하산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쉽다. 정상에서 시간을 조금 더 많이 보내면 바다를 볼 수 있을 듯도 한데 말이다. 나 홀로 오서산 정상에 오르니 홀로 산행 오신 보령에 사신다는 분 한 분만 정상에 있고 아무도 없다. 인증숏을 찍어야 해서 할 수 없이 부탁을 드리고, 함께 점심을 먹는다. 어묵국, 무말랭이, 밥, 귤을 꺼내 나누어 먹고, 육개장 사발면을 조금 얻어먹는다. 조금 있으니까 우리 일행들이 온다.함께 보폭을 맞추어 걷다 보니 오서산 정상석이 또 나온다. 오서산이 여러 행정 관할지에 속해 있어서 정상석이 두 개란다. 또 인증숏 찍고 일행이 있어 사진도 찍어가며 이야기도 나뉘 가며 여유 있게 내려온다. 하산길에 멋진 바위와 돌탑, 희귀한 나무들과 눈을 맞춘다. 다시 가면 인사할 수 있으리라. 나는 오늘 우주복 같은 등산복을 입고 꽤 신비로운 안갯속을 걸어 어디론지 하염없이 걸어가는 듯했다. 밤새 꿈이 참 상서로웠다. 아주 희귀한 나무, 커다란 나무 둥치와 뿌리가 달린 걸 두 개나 얻어가지고 값이 얼마나 나가나 따져보는 꿈이었다. 그동안 쭈욱 꿈을 잘 안 꾸었는데 요즘은 가끔 산행하는 꿈을 꾼다. 하산길에 본 희귀한 나무가 꿈속에서 본 나무랑 많이 닮아서 참 신기했다. 2020년 첫 산행을 오서산에서 하며 '산 이름에 내 이름 글자가 두 개나 들어있구나!' 이정표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영어로 'OSEO'라고 되어 있던데 내 영문 이름이랑도 네 글자가 똑같다. 바로 오늘 내 이름 닮은 산을 오른 것이다.
제10좌 눈 산행과 눈꽃 축제 : 태백산 (2020. 1. 11. 토)
태백산은 지금 눈꽃 축제 기간(1/10-1/19)이다. 수원시청에서 출발하는 신나산 1월 정기산행 태백산을 신청해놓고 마음이 자꾸만 설렌다. 하얀 눈꽃의 세계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갈 수 있으리라. 평소보다 조금 이른 아침 6시 줄 발이라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배낭은 간단하게 꾸려둔다. 겨울산행에 필요한 아이젠, 스패치, 넥워머, 모자, 장갑, 스틱, 선글라스를 준비해놓고, 도시락은 라면 1개에 밥과 김치만 조금 싸갈 예정이다. 신나산에서는 아침에 출발하면서 김밥과 물, 그리고 하산해서는 점심 겸 저녁식사를 주기 때문에 먹을 것을 간단하게 싸가는 게 좋다. 그렇지만 울 딸이 보내준 영양떡과 남편 친구분이 주신 사과즙은 비상식으로 몇 개 싸가지고 가야겠다. 늘 내 짝꿍인 좋은하루님이 오늘도 내 짝꿍이다. 젊고 이쁘고 마음씨가 착해서 같이 앉아 가고 함께 산행하는 게 참 재밌다. 리딩 해주실 강산바람 대장님도 젊고 샤프하면서도 터프하고 멋지시다. 오늘은 사진 조금만 찍고 부지런히 선두를 따라가야겠다. 그저 순백의 산을 충분히 느끼면서 걷고 싶다. 아이젠을 차고 눈길을 걷노라니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정겹다. 2020년 1월 태백산에서 좋은 정기를 받는다고 사람들이 제법 많이 와서 거의 줄을 지어서 산을 오른다. 그러다 보니 발자국 소리도 서로 장단이라도 맞추는 듯 경쾌하다. 주목 군락지에 오르니 별 희귀한 주목들이 눈길을 끈다. 엊그제 3일 동안 비만 내리지 않았어도 아마 저 주목들이 상고대 눈꽃을 활짝 피우고 우릴 맞았을 텐데 아쉽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눈을 다 털고 마른 가지로 서 있는 주목들과 마주하며 내 모습을 담아본다.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찍어도 저렇게 찍어도 엑스트라 없는 독사진 찍기가 쉽지 않지만 애를 써본다. 눈길은 시원하다. 소복이 눈 쌓인 나무도 풀숲도 바위도 순결하고 싱그럽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태백산 눈꽃이 기대한 만큼은 아니어서 많이 아쉽지만 길 위에 수풀에 바위에 눈이 쌓여 있어서 그런대로 겨울정취를 느끼며 산행한다. 주목군락지에는 온갖 희귀한 주목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장군봉 조금 못 미처서 강산바람 대장님이 가져오신 비닐 지붕을 뒤집어쓰고 라면과 밥과 과일을 꺼내서 간단하게 식사한다. 주목군락지를 지나니 태백산 가장 높은 봉우리 장군봉이 나오고 함백산 정상과 능선이 한눈에 조망이 된다. 오늘의 인증숏은 3군데, 장군봉, 천제단, 태백산 정상석, 그중 하나를 찍으면 되지만 줄까지 서가며 모두 다 찍는다. 물론 단체사진도 찍는다. 아참, 신나산 회장님이 사진관 운영을 하시는 분이라서 커다란 카메라를 가져오셔서 단체사진도 개인 사진도 멋지게 찍어 주신다. 요 사진은 며칠 후에나 받겠지만 사진 찍기 좋아하는 우리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하산길에는 눈이 더 많이 쌓여있다. 급경사로 한참 내려오다가 편안한 길이다가 또 급경사로 내려온다. 이쪽으로 올라갔으면 더 어려웠겠다 싶다. 계곡이 있어서 졸졸졸 얼음짱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고드름도 담으며 느릿느릿 여유 있게 걷는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좋겠다 싶다. 누구랑 걸으면 더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짝꿍은 걸음이 빨라서 벌써 저만치 내려가고 또 나 홀로 있는 대로 해찰을 해가며 걷는다.
태백산 눈꽃축제장은 한산하다. 눈꽃축제 기간이 1/10-1/19까지인데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걱정이다. 이글루 카페가 있는데 벌써부터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이다. 커다랗게 만들어놓은 눈 조각들도 얼마나 버텨줄지 싶다. 오늘 우리들은 그런대로 재미있게 보고 왔는데 나중에 오는 분들이 문제이다. 날씨가 겨울답게 좀 추워야만 눈꽃축제가 제 역할을 할 텐데 말이다.
제11좌 그리운 눈 산행 추억 : 원주 치악산(2020년 1월 18일, 토)
치악산은 20대 대학시절에 엄청 춥고 눈이 많이 내린 날, 등고산악회에서 한번 오른 적이 있다. 무척 힘들게 눈 산을 걸어 산꼭대기에 오르니 코털이며 얼굴 솜털이며 입김까지도 모두 다 얼었다. 입이 얼어붙어서 무엇을 먹지도 못하고 그냥 눈 쌓인 길을 거의 앉아서 미끄럼을 타듯이 내려왔다.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눈 쌓인 정상의 돌탑과 그 옆에서 완전무장을 한 채 겨울 눈산을 조망하고 서있는 얼어붙은 내 얼굴 모습을 그릴 것 같다. 또 한 장면 엉덩이로 눈썰매를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우리들 모습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더욱 생생한 기억이다. 치악산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안고, 내 평소 산행 실력보다 조금 더 난이도가 높은 치악산 산행에 도전한다. 총 12km 거리를 6시간 만에 산행한다. 아무래도 좀 무리이겠다 싶지만 그래도 이제는 블랙야크 100대 명산 11번째 인증숏이니 조금씩 수준을 높여도 좋겠다 싶어서이다. 그렇지만 조금 고생은 한다. 물론 오름길이 많으니 '나 홀로 산행'이 거의 다인 셈이라고나 할까? 눈 쌓인 길을 호젓하게 걷는 맛이 있다. 산행객도 그다지 많지 않아 좋다. 한 3-4팀 정도 울산에서도 서울에서도 수원에서도 오고 우리 좋은산에서도 온다. 대형버스가 승용차 주차장까지 진입하지 못해서 도로를 걷는 것도 만만치 않다. 대형버스 주차장에서 입석대까지 걷는데 벌써 힘이 다 빠졌는데, 입석대부터 계속 계속 오름길이다. '와우! 난 왜 이렇게 오름길이 힘든 거야?' 걸음이 계속 느려져서 우리 일행들은 모두 다 앞서가고 '나홀로 산행'을 한다. 황골삼거리까지 또 오름길이다. 비로봉이 정상 탑을 보여주는 데도 거기까지 잠시 평탄한 길 지나니 또 오름길이다.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그렇게 걷지 않으면 도무지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치악산 비로봉. 이제 곧이려니 했더니 아직도 멀다. 그래도 중간중간 전망대에서는 주변 풍경과 산 능선 조망을 하고 여유 있게 걷는다. 쥐너미재 전망대에서 본 풍경은 그리 탁 트인 건 아니지만 능선이 멋지다. 굽이굽이 겨울나무 사이로 땅 위에만 눈이 쌓여 희끗희끗한 게 장관이다. 눈길을 걷다가 눈이 많이 쌓여있는 곳에서 검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사랑'이라 써본다. '이 세상에 사랑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느새 비로봉 정상 도착! 블랙야크 100대 명산 11번째 인증숏을 찍는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인증숏 찍는 데는 줄을 서야 한다. 양쪽 돌탑에서도 사진 찍고, 전망이 좋은 곳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점심은 시야가 탁 트인 왼쪽 돌탑 아래서 점심을 먹는다. 너구리를 한 개 가져오고 뜨거운 물을 보온 통에 싸왔는데 잘 익지가 않는다. 요번에도 컵면 종류를 잘못 선택한 듯하다. 싸온 밥과 멸치볶음과 김치, 사과 한 개, 그리고 너구리 소 컵면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참 요번엔 클린산행 샷도 찍어본다. 내 쓰레기와 옆에 앉은 이들 쓰레기를 주워가지고 봉지에 담아서 들고 사진 찍으면 된다. 그것도 비로봉 앞에서 찍는다. 점심 먹고 나니 모두들 거의 다 내려가고 정상에는 몇 사람 안 남아서 사진 찍기가 좋다. 하산은 사다리병창 길 쪽으로 내려오는데, 도대체 계단이 몇 개인가 싶다. 그래도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어서 걷는 맛이 있다. 하염없이 내려온다. 집결 시간까지 가려면 조금 빠듯하겠다 싶어서 서두른다. 오름길은 힘들어도 하산길은 제법 빠른 편이라서 거의 2시간 만에 휘리릭 내려온다. 산이 높은 산은 내려오는 길이 엄청 긴데 말이다. 버스는 구룡사 소형 주차장에서도 한참을 더 내려가야 있다. 휴!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온다. 아니다. 핸드폰으로 리딩 대장님께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니까 한 5분 정도 늦었다. 그래도 안전하게 즐겁게 산행했으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