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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08. 2023

공부가 좋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장승수, 김영사)라는 책을 쓴 장승수님은 집이 가난해서 이 세상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이 거의 모든 일을 다 해보았다고 한다. 가스 배달, 막노동, 중국집 배달원 등  생계유지를 위해서 험한 일을 하서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고백은 공부가 가장 쉬워서 공부를 했더니 서울대 수석입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법대에 말이다. IQ113에 내신성적이 5등급인 그가 어떻게 그런 결과를 품에 안을 수 있었을까? 공부가 쉬워서 열심히 했기 때문이란다. 1996년 초반 발행된 이후 지금까지 27년 동안 계속 수험서적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이다. 현재 장승수님은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장승수님은 말한다.

"사람에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는 머리가 제법 좋은 편이다. 아마도 친정 엄마를 닮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저냥 한 편이다. 밤늦게까지 공부한 경험도 도서관 가서 죽자 살자 공부한 경험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계속 공부를 한 것은 맞는다.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이듬해 시험을 치고, 또 떨어지면 그 이듬해 또다시 시험을 치고, 될 때까지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한다. 대입시 준비를 할 때도 친구의 도움으로 한 6개월 정도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하반기에는 학원비가 없어서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혼자 공부를 했다. 러니 초집중해야 할 막바지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 아주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입시제도 영향도 있었다. 내가 대학입시를 치르던 80년대 초에는 대입복수지원 제도가 있었다. 한 사람이 원서를 10개 대학지 쓸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어느 대학이나 허수 지원이 많았다. 한 수험생 당 2-3군데 지은 보통이고, 경제력이 있어서 원서대금 부담이 없는 사람은 최대치인 10 군대까지 대학을 지원하기도 했다. 지원자가 한 곳으로 우르르 몰리면 다른 곳은 미달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래도 공부를 제법 열심히 했을 때는 꼭 한꺼번에 지원자가 몰리는 학교, 학과로 가서 면접을 보는 바람에 보기 좋게 낙방을 하였다. 실력대로라면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는 대학인데도 말이다. 내가 가서 면접을 보지 않은 더 높은 점수의 학교, 학과 미달사태로 인해 나보다 성적이 안 좋은 사람이 붙는 도 많았다.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입시 정책이 그랬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조금 좋은 대신 그리 노력을 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꽤 괜찮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작 대학에 들어가던 해에는 시험공부 하나도 안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수입이 있으니 옷도 사 입고 머리 파마도 하고 화장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그랬다. 그러다가 대학입시 원서를 쓰는 때가 오자 불현듯 그냥 원서라도 쓰고 시험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시험을 쳐서 E학에 들어갔다. 대로 공부를 했다면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는 내가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E대학에 붙었으니 천재인 줄 알고 등록금을 주어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 해 전에 종로학원에 다니면서  한 6개월 정도 공부한 실력이 있어서 다 까먹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학원비를 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첫 등록금은 주지만 그다음은 혼자 알아서 해라."

"알았어요."


그리고 나는 입학과 더불어 끝없는 아르바이트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당시는 과외금지법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제도가 생겨서 과외지도도 하지 못했다. 장학금도 일부는 받았지만 등록금을 내기에도 내가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인구조사, 백화점 판매원, 의료수가 계산원, 동사무소 보조원, 땅콩차, 율무차 판매, 교통 안내 등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가 여러 가지였다. 아마도 공부보다는 아르바이트에 더 열을 쏟으며 대학을 다닌 것 같다. 방학 때는 물론이고 개강을 하면 직업보도실 옆에 무슨 아르바이트 공고가 나나 살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야 했기에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었는데 나는 휴학도 하지 않고 대학 4년을 잘 마쳤다. 열심히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대학원도 갔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니 해보지 못한 문예창작학을 더 공부해보고 싶었다.


나는 머리가 은 편이라 대충 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전혀 노력하는 습관이 안 되어 있다. 조금 힘들면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유명해지지도 성공하지도 못한 것일까? 그러나 후회는 없다. 해보고 싶은 것을 어느 정도는 해보았으니까.


특별히 공부는 아직도 하고  있고 재미가 있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 공부하는 일이다.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계속 계속 공부하는 일,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볼 것이 있다. 장승수님처럼 열심히 하는 의지까지 내게 있었다면 아마도 큰일을 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처럼 한가로운 삶이 아니라 무척 바쁜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또 감사하다. 누구에게나 한 가지 장점과 한 가지 단점을 고르게 주신 분께 말이다. 그래서 장점은 곧 단점이고 단점은 곧 장점이 되는 이치를 깨달으며 그저 공부를 하는 일 그 자체로 나는 잘 살아왔다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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