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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21. 2023

4. 미행

진은 빛나고에 입학하고 이배려를 만났다. 배려는 다른 중학교에서 빛나고에 진학했는데, 낯선 아이 배려는 순진과 짝꿍이 되면서 단짝 친구가 되었다.


배려는 이름처럼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는 아이였다. 키도 크고 통통하고 짧은 커트 머리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분간이 안 가는 그런 유형이었다.


순진은 배려와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배려도 순진의 순수하면서도 다부진 면이 좋았다. 방과 후에는 만나 교정의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 고등학교 와서 너 만난 거 진짜 좋아.”
“나두. 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마음이 정말 잘 맞는 거 같지? 우리 이담에 어른이 되어서도 변치 않는 우정 간직하자, 응?”
순진과 배려는 두 손을 맞잡고 약속했다. 차츰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실은 나도 아빠가 없어. 우리 집에는 내려오는 '뇌졸증'이라는 유전병이 있는데, 아빠가 그 병에 걸려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니까 너무 일찍 돌아가신 거지. 아빠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쓰러지셨대. 그후 계속 아파서 병원과 요양원에서 생활했어. 그래서 우리한테 별로 잘해준 게 없어. 그래도 돌아가시고 나니까 자꾸 보고 싶더라. 아빠가 아프시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 한 사람의 존재라는 게 그렇더라니까!”


배려는 한 손으로는 팔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서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들었다. 배려의 실루엣이 석양과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랬구나! 난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아빠를 잃었잖아. 그렇지만 지금은 둘다 아빠가 없으니까 너랑 나랑 닮은 데가 많네.”
배려는 순진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가 더 쉽게 친해진 것 같아.”

배려가 등을 돌려서 의자에 앉아있는 순진을 내려다 보았다.

"맞아. 우린  같은 아픔이 있으니까."

순진은 배려를 올려다보았다. 순진의 얼굴이 석양빛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배려가 순진의 옆에 와서 앉으며 가만히 손을 잡았다. 순진과 배려는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노을에 어스름이 몰려와서 묘한 환상의 공간을 자아낼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있곤 했다.


“참, 우리 오빠 전교학생회장인 거 알고 있지?”
“이강민 오빠 말야?”
“응.”
“오빠는 나랑은 달라. 굉장히 노력형이고 머리도 좋아. 무어든 적극적이야.”
“나도 알지. 나랑 빛나중 같아 다녔잖아. 거기서도 학생회장 했으니까 강민 오빠 모르는 사람 없어. 우리 아빠도 강민 오빠는 장래 '우리나라의 리더감'이라고 칭찬이 자자했어. 학생회장으로서 맡은 일 이외에도 희생정신이 강하고, 무슨 일이든  딱 부러지게 쟐한대. 너네 오빠 정말 멋져!”
“다들 그렇게 말하지. 나랑 오누이인 거 모르는 사람도 많아. 워낙 안 닮았잖아. 생김새도 하는 짓도 공부도 다. 오빠가 뭐든 뛰어나서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어.”


배려는 한참 숨을 돌리고 나서 순진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참, 근데 우리 오빠가 너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너랑 같은 반이 되었다고 하니까 맨날 너에 대해서 물어봐.”
순진은 살그머니 볼이 달아오르는 걸 느껴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렇지만 짙어지는 어둠 덕분에 전혀 티가 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가는 진로체험의 날이었다. 빛나고는 각 학년이 4개 반씩 있었는데, 1학기에 매달 1개의 반이 진로체험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순진과 배려는 1반이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진로체험을 하러 갔다.
반 아이들을 6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산업현장에 가서 미래 유망 직종인 6가지 직업에 대해 살펴보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순진과 배려는 의료인을 신청했기에 바른대학병원으로 가야 했다.


순진과 배려는 빛나마을 네거리에서 만났다. 거기에 가면 바른대학병원으로 한 번에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배려야, 저기 뒤에 오는 사람 있지? 지팡이 짚고 오는 저 할아버지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 집 있는 데서부터 날 따라왔어. 고개를 푹 숙이고 안 그러는 척하면서 내가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저 할아버지도 뒤를 돌아보고, 내가 가다가 걸음을 멈추면 저 할아버지도 걸음을 멈춘다니까! 날 자꾸 미행하고 있어.”
순진은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배려는 전혀 그 할아버지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제는 대학생 같은 청년이 내가 시장에 가고 있는 데 날 미행했고, 그저께는 내 또래의 남자애였어. 날마다 사람이 바뀌어서 날 미행해.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그러는 것 같아.”
순진은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배려 등 뒤로 숨으면서 그 할아버지가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쉿! 조용히 해. 내가 없어진 것처럼 해야 저 할아버지가 지나갈 거야.”
순진은 배려 뒤에서 오른손을 뻗쳐서 배려의 입을 살짝 가렸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느릿느릿 버스 정류장을 지나 시장통 골목으로 들어갔다.


바른대학병원은 굉장히 크고 1층 로비에서부터 소독 냄새가 진동했다. 순진은 아빠의 장례식 이후 처음 와보는 대학병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동안 큰 탈 없이 잘 지내온 것 같았다. 병원을 자주 가지 않고 지낸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복인지도 몰랐다. 집안에 그만큼 아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엄마와 병원에 가끔 가긴 했지만, 순진은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시골에 사시는 순진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직은 건강하셔서 고추 농사를 짓고 계셨다. 집 뒤쪽으로 있는 밭에다 고추만 심어서 가꾸셨다. 넓은 마당에 비닐하우스 한 동을 지어 놓고 그곳에다 고추를 말리곤 했다. 가만가만 일하시면서도 용돈은 벌어 쓰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바른대학병원 안내데스크에 빛나고에서 진로체험 왔다고 말하자, 4층 소강당으로 올라가라고 알려주었다.


먼저 병원장님이 나와서 병원 전반에 대한 설명을 했다. 다음으로는 영상을 보여 주며 병원에서 하는 일, 의사가 되는 길, 의사가 되면 하는 일 등을 보여 주었다. 그러고 나서 외과의사, 내과의사, 정신과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이 나와서 의사와 간호사, 방사선사 등 의료인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순진은 정신과 의사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참 특이한 경우도 있어요. 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정신병을 앓고 나서 치유된 후에 뇌과학자가 된 사람도 있지요.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이런 책 읽어본 사람 있나요? 이 책은 두 사람이 썼는데요, 한 사람은 정신과 의사이면서 뇌학자입니다. 뇌에 종양이 생기면서 정신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뇌과학자도 됩니다. 병이라고 해서 지레 겁을 먹거나 너무 일찍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병을 지니고 살면서도 위대한 사람이 된 경우는 인류 역사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탐색해 보고 꿈을 가지기 바래요.”


순진은 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뇌과학자라고? 뇌과학자. 뇌과학자. 나도 뇌과학자가 되고 싶어!”
순진은 엎드려서 기도를 하듯이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뇌과학자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겨 넣었다.


“순진이 너, 오늘 정말 이상한 거 알아?”
배려는 진로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순진에게 말했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바버라 립스카, 일레인 맥아들 지음, 정지인 옮김, 심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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