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오늘 다매산에서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려고 했는데, 입산통제가 되었단다. 코로나에 태풍도 지나가서 설악산 곳곳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함양 황석산+거망산으로 장소변경을 한다. 함양은 지리산에 있을 때 자주 갔던 곳이다. 함양 고속터미널이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다. 그곳에서 인월이나 백무동 쪽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함양 인공 숲인 상림숲길도 걸어보고 맛집도 여러 군데 가보았지만 산은 처음이다.
황석산은 지조와 절개의 산이란 별칭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려다가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란다. 남정네들은 싸우다 죽고, 아낙네들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황석산은 돌무더기 산이라는데 아침에 비가 와서 조금 걱정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함양에 비 소식은 없었는데 말이다. 요즘 통 일기예보가 안 맞는다. 길은 잘 닦여 있다니까 괜찮을 것 같긴 하다. 나는 황석산만 탈 예정이다.
오전 10시 30분 함양 유동마을에 도착하니 사과밭, 오미자밭에 열매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려있다. 커다란 버섯이 나무에서 자란다.
옆에 앉은 짝꿍은 함양 마천이 고향이란다. 온갖 산의 나무와 열매들 이름을 거의 다 안다. 버섯도 어느 게 먹을 수 있는 건지를 안다. 길가의 밤나무에서 딴 떡 버섯이라며 나에게 나누어 준다.
짝꿍은 벌써 100대 명산을 70개나 찍었단다. 몸도 제법 통통한데 산은 아주 잘 탄다. 뭐 느리다고 하면서도 나보다 빠르다.
야생화에 버섯에 초록숲에 눈길을 보내며 나 홀로 걷는다. 걸음이 느리니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고즈넉이 사색하며 걷는다. 때로는 가파른 바윗길, 로프 길 잘도 오른다. 이런 지혜 저런 지혜를 짜내가며 산을 오른다.
장마에 태풍에 여름이 여름답지 않게 지나가고 어느새 가을이 왔다. 산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나뭇잎에 단풍 들고 열매가 익어가는 걸 보면 가을이 성큼 내 곁에 와 있는 걸 느낀다.
가을에는 추수할 것이 많아야 좋은데,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가꾸지 않았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실을 얻기는 어려우리라.
간간이 이슬비가 조금씩 뿌리는 황석산 산행, 숲이 우거져 비옷을 꺼내 입지 않아도 젖을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걷는다.
야생화들은 산 높은 곳에서도 핀다. 가다 보면 하얀 꽃, 노란 꽃, 분홍꽃. 차암 예쁘다. 꽃밴님이 그런다.
"사진만 찰깍찰깍 찍는 건 욕심이에요. 꽃과 대화를 나누세요!"
그럴지도 모른다. 타고 돌아올 차 시간에 맞추어 부지런히 걸어야 하니까 천천히 음미하며 꽃과 나무와 이야기하며 걷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어떤 때는 사진 찍는 것조차도 시간을 많이 빼앗아갈 수 있다.
그래도 바쁜 산행길에 꽃과 나무와 풍경을 담는 건 큰 기쁨이다. 내가 그 속에 있었다는 걸 증명해주는 인증숏 역시 꼭 필요한 것이다.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산길 구석구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간이 지나가도 추억은 소환해 볼 수 있어서 더없이 좋다. 사진 찍고 글을 쓰고 기록은 남기는 건 참 좋은 습관 중 하나이다. 그날이 가기 전에, 적어도 하루나 이틀이 지나기 전에, 생생한 기록을 남길 수 있어서 나의 산행도 여행도 기쁨이 두 배, 세 배이다.
이번 황석산 산행에서는 신기한 모양의 버섯을 꽤 담았다. 짝꿍은 버섯을 보면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닌 지 금방 안다. 그렇지만 나는 잘 모른다. 어려서 시골에 살았다고는 해도 버섯 같은 걸 따러 산에 다닌 적은 벼로 없었던 것 같다.
황석산성 보수하는 곳에 이르니 이제 정상이 100m 남았다. 거기서 점심을 먹는 이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냥 정상으로 바로 오르기로 한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었다. 약 2시간 30분 산행한 셈이다. 점심시간을 넘겨 조금 배가 고팠지만, 정상에서 누군가 인증숏 찍어줄 이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서다. 셀카는 아무래도 사진이 제대로 안 나온다.
다행히 젊은이가 정상에서 내려오길래
누구 정상에 있어요?"
하고 물으니 아무도 없단다.
"그럼 인증숏을 어떻게 찍나?"
"제가 도와 드려요?"
"그럼 감사하죠."
이래서 정상으로 오르는 데크길에서도 정상에서도 여러 컷을 찍어준다.
운무 낀 황석산에서 100대 명산 31번째 인증숏이다. 오르기 시작할 때는 비도 안 오고 날씨가 제법 괜찮았는데 정상에 올라오니 운무가 가득하다. 주변 조망이 안갯속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운무 속 내 모습이 꽤나 신비스럽다.
하산은 거망산 쪽으로 가다가 장자 벌 마을 쪽으로 갈 예정이다. 용추계곡 주차장에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산이 높은 산은 하산길이 길다. 황석산 역시 높이가 1,192m인 산이라서 등산길보다도 하산길이 더 길고 지루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더군다나 하산길에도 로프 잡고 타야 하는 암릉이 몇 개나 나온다. 운무가 껴서 조망도 전혀 없다. 그냥 숲 속에서 나 홀로 걷기다. 걸어도 걸어도 청량사와 장자벌 마을 표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뫼재에서 길이 갈린다는데 이정표에 뫼재 표시도 없다.
부부인 듯한 분 둘이서 왼쪽 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면서 나오길래,
"거긴 어디 가는 길이에요?"
물었더니 거망산 가는 길이란다.
나는 오늘 거망산은 오르지 않을 거라서 지도를 펴고 장자벌마을 확인을 한 후 오른쪽 길로 내려온다. 그리 가파르진 않지만 경사가 제법 있는 흙길에 돌길 너덜길이다. 빠르게 걷기가 어려운 길이다. 안전이 우선이라 스틱을 짚고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걷는다. 역시나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아까 갈림길에서 장자벌마을까지는 3.4km인데 말이다. 길이 좋으면 1시간 정도면 내려갈 수 있는 길인데, 길이 안 좋다. 땅이 젖어 미끄럽기도 하다.
콸콸 흐르는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용추계곡이 나오는가 싶은데 또 건너서 한참을 가야 한다. 아직 청량사는 보이지도 않는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버스에 타야 할 시간은 4시 30분이다. 급히 리딩 대장님에게 전화를 한다.
"용추계곡 나왔는데 아직 멀었나요?"
쭉 더 내려오란다.
부지런히 또 걸으니까 조그만 청량사가 보인다. 거기서 또 전화한다.
"어느 길로 가야 용추계곡 주차장인가요?"
리딩 대장님도 길을 잘 모른다. 청량사 바로 아래 도로길에서 왼쪽으로 도로 따라 올라오라는데 길이 없다. 일단 끊고 또 밑으로 쭉 걷는다.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리딩 대장님, 장자벌마을 쪽으로 끝까지 내려오란다. 거기서 왼쪽으로 10여 분 정도 걸어오면 된단다.
그런데 용추계곡에 다리가 나오는데 건너가야 하는 건지 또 길을 모르겠다. 마침 용추계곡 다리 앞쪽에 젊은이 하나가 승용차에서 내리길래 길을 물어본다. 다리 건너서 왼쪽으로 가란다. 무사히 용추계곡 주차장 도착, 우리가 타고 갈 다매산 차를 만난다. 아직 차에 탑승한 사람이 별로 없다. 5시까지 탑승하는 거였던 모양이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여벌 옷을 가지고 나와 화장실에서 씻고 갈아입는다. 너무나 개운하다.
이래저래 좀 많이 헤맸지만 젊은이 두 명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날이 되었다.
제33좌 영남 알프스 억새의 향연 사자평원 : 금 무박 울주 재약산(2020. 10. 3. 토)
드디어 1일 3 산 연계 산행 성공을 했다. 영남 알프스 능동산+천황산+재약산 3개의 산을 올랐다. 마음이 참 뿌듯하다.
새벽 4시 30분 헤드랜턴을 켜고 능동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지만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우비 안 입고 그냥 걸었다. 금 무박 산행은 새벽에 산길 걷는 기분이 참 좋다. 시간도 여유가 있다. 오늘은 후미를 잘 챙기는 대장님과 친구분, 또 혼자 오신 분 몇 명이 함께 했다. 가끔은 수다를 떨며 걷는 산행도 좋다.
미산 대장님 하고 함께 가니까 이곳저곳 들러가면서 산행을 한다. 초반에는 능동산 정상 오른 후 유명한 쇠점골 약수터에 들러 목을 축인다.
쇠점골 약수터에서 샘물상회까지는 편안한 임돗길이다. 장마와 태풍으로 길이 패인 곳도 있고 돌자갈을 깔아놓은 곳도 있다. 새벽 산행이라 이런 임도길 걷는 것도 참 상쾌하다.
샘물상회는 아직 문을 안 열었다. 리면, 커피, 생수 등을 판다고 하는데 모닝커피를 한잔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이정표 앞에 벌개미취(별개 미취)가 무리 지어 피어서 주변이 화안 하다. 함께 한 두 분이 '여기서 아침 먹고 가냐?'라고 물어보는데, 대장님이 '아직 6시면 새벽'이라고, 조금 더 있다 먹잖다.
그래서 두 분은 먼저 가고, 우리는 이정표에서 인증숏 찍기 바쁘다. 샘물상회를 배경으로도 서본다.
천황산 사자봉 정상으로 가까워질수록 나무데크길을 따라 억새가 무리 지어 있어 운치가 있다. 멀리 산 능선도 구불구불 멋지다. 정상 가까이에 텐트를 치고 야영한 젊은이들이 텐트를 걷고 있다. 억새길을 배경으로 인증숏 부탁을 한다.
천황산 정상에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 새벽 4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3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사자봉에서 영남알프스 9봉 4번째 인증숏을 찍는다.
일행들과 함께 앉아 점심을 먹는다. 대장님이 쪄온 감자, 친구분이 만들어온 홍삼과 곶감, 내가 싸간 황금사과를 나누어 먹는다. 간단한 아침인 셈이다.
영남 알프스 천황산은 전망이 참 좋다. 정상부의 억새밭도 멋지다. 정상석과 돌탑을 빙 둘러서 억새밭이 있고, 저 멀리 영남 알프스 9개 봉우리들과 주변 산봉우리들이 두루 조망이 된다. 시원하게 탁 트인 공간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천황산은 영남 알프스 9봉 인증 외에는 100대 명산이나 100+ 명산 같은 다른 인증이 없는 산이다. 누가 산의 유명도를 정하는 것일까? 그 어느 산에 못지않게 풍광이 빼어난 산인데 말이다.
천황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아주 쉽게 사자봉 정상에 오를 수가 있다.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는 산이라 명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능동산 쪽이나 케이블카를 타고 와서 천황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아주 편안한 길이다.
그러나 재약산 쪽에서 천황산을 오르려면 마지막 부분에서 만만치 않은 오름길이 이어진다.
능동산+천황산+재약산 연계 산행을 '영남 알프스 하프 종주'라고 부른다. 간월산+신불산+영축산 연계 산행도 또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전체를 다 오를 때는 '영남 알프스 태극종주'라고 한다. 이쪽 반원, 저쪽 반원이 태극모양인 모양이다.
간월산, 신불산, 문복산, 천황산, 재약산, 이렇게 영남 알프스 5개 인증을 했으니, 이제 가지산, 운문산, 영축산, 고헌산 4개가 남았다. 올해 안에 영남 알프스 9봉 인증을 다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천황산 사자봉 지나니 눈앞에 펼쳐지는 전망이 장관이다. 멋진 바위에서 운무가 살짝 올라오는 산봉우리들과 골짜기를 바라보니 내가 천상의 사람인 양 신비롭다. 누가 산속에 이런 풍광을 만들었을까? 정답은 뻔하지만 묻고 또 물어본다. 사람이 무엇 이관데 주께서 베풀어 두셨나이까! 성경 시편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천황산 사자봉 지나 재약산 수미봉을 향해 간다. 가는 길에 억새가 장관이다. 그 유명한 영남 알프스 억새는 간월산, 신불산 쪽이 더 아름답다지만, 나는 이전에 오른 곳이라서 이번에는 천황산, 재약산 쪽을 오른다.
천황산에서 재약산 가는 길은 억새평원 지나니 가파르다. 바윗길도 꽤 있다. 그렇지만 길지 않아 좋다. 이 구간에서는 사진을 찍다 보니 또 혼자 걷는다. 그래도 참 좋다.
빨갛게 단풍이 든 모습도 보인다. 조금씩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니 가을 속을 걷고 있구나 실감이 난다.
재약산에서 영남 알프스 9봉 5번째 인증숏과 100대 명산 32번째 인증숏을 찍는다.
하늘이 참 푸르고 드높다. 어떤 이는 '하늘을 마음껏 우러러보기 위해서 산을 오른다'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마음껏 볼 수 있기에,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는 저 아래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그저 산을 오른다.
그래서 정상에 서면 사진도 많이 찍는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에서 야생화와 눈 맞추는 일은 발걸음을 더디게 하지만 제법 재미가 있다. 산 높은 곳에 한 송이 두 송이 때로는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 참 고고하다는 생각이다. 누가 보아주든 안 보아주든 그저 피어나 있는 것이다. 흙, 공기, 햇볕,. 그리고 씨앗이 있으면 그 어디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저 가녀린 몸으로 온 산을 다 품고 있다.
영남 알프스에는 보랏빛 별처럼 생긴 벌개미취(별개 미취)가 참 많이 피어있다. 대체로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많지만 사진을 찍어와서 꽃 이름을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사리분교터에 도착하니 1966년~1996년까지 총 3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교적비가 있다. 뜰에는 커다란 나무와 억새가 무성하다. 저 나무와 억새들은 고사리 분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낼까 궁금해진다.
다른 지역이지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도 몇 년 전에 폐교했기에 감회가 새롭다.
일행 중 2명은 층층폭포를 보러 가고 3명이서 느리게 천천히 사자평으로 들어선다.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진다.
영남 알프스 사자평은 한때 훼손되었다가 다시 살려낸 억새 군락지라고 한다.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억새 품에 안긴다. 산행을 하는 이, 자전거를 타는 이, 그저 사자평만 걷는 이, 다 다른 모습이지만 억새평원에 서면 모두가 다 풍경 속 모델이 된다. 사자평에 출입구 표시가 있어서 더욱 신비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영남 알프스 사자평 억새길 걷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하늘하늘 흔들린다. 하늘은 맑은데 다른 쪽에는 먹구름도 끼었다. 억새 우거진 저편으로 우리가 올라갔다 온 재약산 봉우리가 보인다. 이렇게 드넓은 억새길을 끝없이 걸어가면 그 어디에 다다를까? 아마도 꿈꾸던 세계가 아닐까 싶다.
추석 지나고 나니 가을은 가을이다. 군데군데 단풍이 든 곳이 보인다. 보리수도 찔레도 열매를 많이 맺었다.
억새가 장관인 영남알프스 능동산+천황산+재약산을 오르고 사자평을 들러서 죽전마을로 내려간다. 그 어디나 길이 예쁘다. 하루 종일 걸어도 좋을 길이다.
재약산 수미봉에서 바로 사자평으로 내려가서 죽전마을로 가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 같다며 리딩 대장님이 고사리 분교와 층층폭포 보고 ㄷ자로 사자평으로 빙 돌아서 가잔다. 우리는 무조건 좋다며 따라간다.
사자평원에서 죽전마을 가는 길은 가파르고 거칠다. 영남알프스 억새의 향연을 보고 가는 길이니 감수해야 하리라.
제34좌 영남 알프스 최고봉 : 울주 가지산(2020. 10. 9. 토)
올해 영남 알프스 9봉 완등을 해보려고 지난주에 이어서 영남 알프스를 가고 있다. 간월산+신불산 갔을 때 영축산을 갔어야 하는데 못 갔고, 문복산+고헌산 갔을 때 고헌산을 갔어야 하는데 못 갔다. 영축산은 일정에 없어서 못 갔고, 고헌산은 한여름 삼복더위라 생략했다. 이래저래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렇지만 영남 알프스는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니까 가을 내내 그곳을 계속 갈 수 있으니 더 좋은 셈이 되었다.
오늘은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을 밟고, 또 운문산까지 오를 예정이다.
가지산 날씨가 비가 한 차례 올 거라는 둥 흐릴 거라는 둥, 그래서 취소해야 하나 어쩌나 하다가 왔는데 날씨는 정말 좋다. 선선하고 걷기에 딱 좋다. 바람이 좀 심하게 불어서 가만히 서 있으면 춥지만 걸으면 괜찮다.
가지산 정상부는 완전 바위로만 되어 있다. 올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다. 가지산 정상에서 100대 명산 33번째 인증숏과 영남알프스 9봉 6번째 인증숏을 찍는다. 가지산은 정상석이 두 개라서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재미나게 사진을 찍는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모자도 인증 타월도 날아갈 것만 같다. 간신히 붙잡고 사진을 찍는다.
가지산 가지 산장 옆에서 점심을 먹고 운문산을 향해 걷는다. 가파르게 잠시 내려오니 헬기장이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라 걷기가 좋다.
군데군데 빨갛게 든 단풍과 예쁜 꽃들을 담는다. 산행의 별미라고나 할까? 빠르게 걸으면서도 잠시 눈을 맞춘다.
낮 12시부터 가지산 산행을 시작해서 아랫재 도착하니 오후 3시 20분이다. 아랫재에서 운문산에 갔다 오려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해서 무작정 오른다. 운문산은 거의 가파른 오름길이다. 마지막 부분은 바위가 거칠다. 거의 4/5 지점쯤 오르니까 트랭글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한다. 길을 잘못 들면 하산할 때 쉬 날이 어두워질 수도 있어서 아쉽지만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사진도 안 찍고 그냥 내려온다. 사실 시간은 여유가 있었는데 말이다.
하산하니 5시 30분이다. 계곡에서 씻고 간단하게 싸간 저녁 간식 소시지와 사과를 먹고 조금 있으니까 대장님이 내려오셨다. 나보고 왜 운문산 안 올라왔느냐고 거기서 1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왠지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다. 걸음이 느린 데다가 사진도 많이 찍어서 언제나 후미라서 그렇다. 기다리는 줄 알았으면 운문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데 조금 아쉽다. 그렇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괜찮다. 여유 있는 쾌적한 산행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