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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24. 2023

'승리'라는 이름!

영화 《안시성》

9월 들어 비가 자주 내리니 날씨가 제법 춥다. 긴팔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싸늘함을 느낀다.


추석연휴에는 무슨 영화를 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연휴 전에 보는 게 더 좋겠다 싶어 아침 일찍 예매를 한다.


최근 개봉영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화와 역사극이 있다. 오늘은 역사극 《안시성》을 보기로 한다. 조인성이 주인공 양만춘역으로 나온다는데,  일간지에서 갑옷이 당시옷과 맞느니 안 맞느니, 투구를 썼느니 안 썼느니, 역사적인 고증이 맞느니 안 맞느니, 말이 많다. 감독은 역사적 고증을 다 하고 만들었다는데 시시비비가 있다.


그렇지만 주인공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공을 많이 들인 영화라고 하니 그거 하나만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이다. 아군의 병사 수가 적군의 병사 수에 비해 턱없이 역부족인데 투지력으로 적을 이기는 싸움이란다. 성경에도 이런 싸움은 부지기수다. 싸움에 이기려면 전투력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포스터 앞에서 인증숏 한 컷 찍고 상영관으로 입장, 영화를 기다린다.


명절이 되면 늘 그렇다. 내게는 더 한가롭다. 그래서 아들이 오면 영화를 1편쯤 더 볼 수도 있다.


《안시성》영화는 기대한 만큼 재밌고 스릴이 넘친다. 옛 전투라서 싸우는 방법이 칼과 창과 활로 싸우고 불과 토산을 이용하는 등 예스러운 방법이 전부이지만 병사들의 충성심과 전투심은 그 어떤 현대 전투보다도 진하다.


물론 성주가 성민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병사들도 성의 백성들도 성주에게 충성을 다한다.


연개소문이 보낸 안시성 출신 사물이라는 이는 안시성 성주를 죽일 목적을 가지고 안시성으로 들어간다. 이유는 안시성 성주가 연개소문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반역자라고 죽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은 결국 성주의 편이 되어 위태로울 때 성주의 목숨을 구해주고 또 막바지에 전세가 불리해지자 지원군을 요청하러 평양성에 있는 연개소문에게로 간다.


중간에 성주의 누이동생과 용감한 병사의 사랑 장면이 끼여 있는데, 둘 다 전쟁터에서 죽어 안타까운 여운을 남긴다.


결국 전세가 불리함에도 성주는 외친다.


"나는 물러섬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후퇴를 배운 적이 없다.

나는 항복을 배운 적이 없다."


병사들도 성주를 따라 최선을 다해 싸운다. 마지막에는 안시성 성주가 쏜 주몽의 화살 신궁이 당나라 이세민을 쏘아 전쟁을 끝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던가! 물러섬, 후퇴가 없는 안시성 성주와 병사들을 하늘이 도운 셈이다.


고려의 신궁에 왼쪽 눈을 맞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그로부터 3년 후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면서 다시는 고구려를 치지 말라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승리'라는 이름은 참 좋다. 전세가 불리한 싸움에서의 승리는 더욱 값지다.《안시성》영화를 보고 나니 싸움은 물러섬이 없는 자에게 결국 승리를 안겨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비굴한 항복이 아닌 떳떳한 죽음으로 맞설 때에는 더욱 큰 승리가 주어진다고 여긴다~.


"너는 이길 때만 싸우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전세가 불리하자 싸움을 만류하는 사물에게 안시성 성주가 한 말을 명대사로 기억한다.


그렇다. 왜 싸움이 있겠는가?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내가 가진 것을 빼앗아 더 많이 가지려고 할 때, 그때 그냥 빼앗기거나 아니면 싸움이 일어난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물러섬이란 있을 수 없다. 그때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이에 어울리는 성경의 한 구절이 있다.


"몸은 죽이되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장 28절 말씀)


-영화 《안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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