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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27. 2023

함께 흔들리고 싶은 억새 평원

정선 민둥산

정선 민둥산은 두 번째 산행이다. 몇 년 전에 신나산(※1)에서 계절 좋은 가을에 다녀왔다.


오전 6시 수원시청 앞에서 신나산 산악회 버스를 탄다. 집에서 도보로 20여 분 거리라 가까워서 좋다. 벌써 몇 번째 가려다가 못 가고, 이번이 처음 가는 신나산에서의 산행이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이도 처음이란다. 10여 년 전에 산에 다니다가 못 다니고 오늘 처음 산행이라고 한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하니 참 좋다.


신나산 산악회는 회비를 내면 아침에는 김밥과 물을 주고, 하산해서는 저녁식사도 준다. 더군다나 도보로 이동하니 개인 교통비도 안 든다. 저녁에는 또 일찍 도착해 집에 오니 7시 30분이다. 바로 다음날이 주일이 이런 점은 참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 달에 한 번만 토요일에 산행을 한다는 것이다.


민둥산 주차장에 내리니 온통 억새꽃 축제 분위기다. 축제 장터에서 정선 고랭지 사과를 팔고 있어서 먹어보니 달고 맛나다. 모두들 한 봉지씩 사길래 나도 사고 축제장 분위기에 젖어본다.


그렇지만 우리가 타고 온 차는 오전 9시 정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내려서 제법 한가한 모습이다. 축제장도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아마도 오전 10시나 되어야 축제 분위기가 나지 싶다.  신나산은 다른 쪽으로 내려갈 예정이라서 축제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


민둥산 억새꽃을 보러 가는 길은 가파른 길 완만한 길 두 코스가 나온다. 일부는 가파른 길로 가고 일부는 완만한 길로 간다.


그런데 오르다 보니 완만한 길이 훨씬 조망이 좋고 볼거리도 많다고, 전에 와봤던 분들이 이쪽으로 오길 잘했다고 한다. 우리도 덩달아 좋아하며 사진도 찍어가며 감상도 해가며 우유자적 걷는다. 저 멀리 블랙야크 100대 명산 함백산이 보인다. 오늘의 리딩 강산바람 대장님이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가르쳐 주신다.


담쟁이가 키 큰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정말 신비롭다. 그 가녀린 잎새로 높이높이 나무를 타고 올라 무엇을 보려는 것일까? 아마도 파아란 하늘 하얀 구름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산봉우리들,  드넓게 펼쳐진 벌판들, 끝없이 이어지는 길고 긴 강들, 아기자기한 마을들, 보고 싶은 게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나무들은 이제 막 단풍 들기 시작해서 초록숲에 노랑 물감을 입히기 시작한다. 숲은 가만히 서서 시간을 기다려 채색을 한다. 계절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걸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 모습이 차암 이쁘다!


쉼터에서는 이것저것 먹거리를 팔고 있어서 사람들로 붐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또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민둥산은 억새로 유명한 산인데, 블랙야크 100대 명산은 아니고, 인기 100대 명산이고 블랙야크 100+명산이고, 가을명산으로는 24위란다.(그런데 이때는 내가 명산 인증을 하지  않을 때다.)


 위에 오르니 약간 비가 뿌려 판초를 꺼내 입었는데, 곧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며 하늘이 파랗고 하얀 구름이 뭉클뭉클 일어나 신비롭다.


파란 하늘 아래 흰구름 두둥실 바람 부는 언덕에 억새가 장관을 이룬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화를 찍어도 좋겠다 싶다.


처음 가는 신나산 산악회에서의 산행인데, 좌석 짝꿍도 처음이어서 둘이 재미나게 다녀온다. 한 달에 한 번은 산행할 수 있다는데 자주 함께 하면 좋겠다.


민둥산 정상석 사진을 찍는데, 줄이 얼마나 긴지 한참을 기다렸다. 함께 온 분들은 벌써 점심을 먹는데, 나는 민둥산 처음이라 한 장은 찍어야 해서 끈기 있게 기다린다. 짝꿍이 기다렸다가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하산길 억새는 더 장관이다. 길이 얼마나 이쁜지 사랑하는 이와 도란도란 하염없이 걸어도 좋을 듯싶은 길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이쁜 곳이 있다니 모두가 감탄을 하며 히히 낙락  깔깔대며 노래도 부르며 함께 내려온다. 처음이라도 전혀 처음 같지 않은 신나산에서의 첫 산행! 매월 둘째 토요일에 산행하는데, 가능하면 빠지지 말고 참여해야겠다.


하루에 날씨가 몇 번을 바뀌나 싶다. 항상 여행할 때마다 날씨가 너무 좋다 싶은데, 하루에도 여러 번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았다가 흐렸다가 비가 왔다가 화창하게 개었다가. 그런 때일수록 여행지의 풍경은 신비 속으로 들어간다.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낯선 땅이어서 새로움도 있지만, 날씨 덕분에 더욱 미로 속으로,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번 민둥산 억새 산행도 '백두대간에서 만나는 풍경보다 더 멋지다'라고 다들 감탄을 한다. 아마도 날씨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뿌연 운무 속에 가랑비에 젖으며 우리를 맞는 억새와 또 맑게 개이면서 바람에 마구 흔들리며 춤을 추는 억새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우릴 반기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고즈넉한 슬픔이었다가 갑작스럽게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격한 환호라고나 할까?


억새능선을 지나 하산길은 초록, 연두에 노랑을 더한 단풍의 시작이다. 급경사 나무계단길, 돌길, 그러다가 솔잎 쌓인 길, 지난해 떨어진 낙엽이 마저 다 흙으로 돌아가는 길, 탁 트인 임도, 하염없이 걸어도 좋을 변화가 있는 길이다.


숲은 청량하고 하늘은 넓고 짓푸르고 흰 구름은 자유롭다. 처음 만난 사람들도 하산길쯤에서는 친구가 된다. 서로가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며 어깨춤 엉덩이춤을 덩실덩실 추며 내려오는 길, 발걸음도 가볍다. 우리도 아마 광활한 억새능선 그 어디쯤에서 억새꽃무리의 신명 나는 흥을 배웠지 싶다. 한없이 한없이 함께 어우러져 흔들리고 싶은 오늘 하루,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테마가 있는 산을 가볼 수 있어서 가을을 한껏 느낀다. 억새꽃을 보러 갔다가 계절을 따라 단풍옷을 입는 나무들을 만난다. 아직 완연한 단풍절정은 아니지만 초록에서 노랑으로 바뀌어가는 그 색깔이 너무나 이쁘다.


다음 주나 그다음 주면 남쪽지방에 단풍이 거의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또 맘껏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단풍을 보러 원정산행을 함 가야겠다.

20191012(토) 정선 민둥산


이번에는 신산(※2)에서 태백 연화산+정선 민둥산 1일 2 산이다. 그런데 태백 연화산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 아이젠을 빌려주신 대장님 고마워서 김빕과 사과를 드리고, 나는 미역국  라면과 밥과 김치, 새우볶음을 가져왔는데, 언제 먹나 싶다.


버스를 타고 정선 민둥산으로 30분간 이동한다. 오후 2시에 민둥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밥 안 먹고 오르면 정상을 찍긴 하겠는데, 아무래도 무리다 싶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먹는 게 우선이다. 사실 민둥산은 억새철에 와야 예쁘다. 그런 연유로 나는  민둥산 급경사길 오르다가 완경사길로 접어들어 약 1시간쯤 오르다가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나는 1일 2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에 산 1개 타는 게 여유 있고 좋다. 인증은 다음에 계절 좋은 때에 와서 하면 된다. 일단 올라왔으니 밥을 먹고 30여 분 정도 더 오르고 내려오면 될 것 같다.


점심 식사 후에 오르다 보니까 쉼터였던 곳에 도착했다. 전에는 이곳에서 라면과 커피 같은 걸 팔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아마도 긴 코로나의 영향이지 싶다. 이정표에서 셀카 한 컷 찍어본다. 여기서부터 민둥산 정상까지는 약 1km 남았다. 가는 도중에 억새전망대가 있다. 이전에 억새 예쁠 때 와서 사진도 모두 찍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오르고 하산하기로 한다.


대장님은 어느새 정상 찍고 하산 중이다.

"지금 올라가려면 빠듯할 텐데요."

"아, 네. 정상 안 찍으려고요. 조금 더 올라갔다가 제가 알아서 내려갈게요."

"시간 맞춰서 내려오세요."


나는 오후 3시 30분에 하산 시작한다. 5시까지 내려가면 된다. 걷기 좋은 하산길 여유가 있다.


혼자서 한참 내려오고 있는데 젊은이 한 사람이 올라온다. 이때다, 싶어 사진 부탁을 한다. 셀카 이외에 민둥산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내려와 보니 아직 시간은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화장실에 들러 씻고 귀갓길에 오른다. 민둥산 산행은 총 4.5km, 2시간 30분 소요되었다.


귀갓길에 차 밖으로 보이는 일몰 풍경을 담는다. 해가 정말 커다랗고 동그랗고 빨갛다. 마침 강을 지나가고 있어서 강물에 비친 해의 모습 환상이다.

리딩 대장님이 찍은 정선 민둥산
20230225(토) 정선 민둥산
귀갓길 일몰 풍경

※1. 신나산 : 신나무실 산악회

※2. 신산 : 신사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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